요즘같이 신문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물론 월드컵 때문이다. 월드컵이 코앞에 박두했을 때부터 나는 미국 신문이 싱거워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더니 이젠 헤드라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동안 정치추문으로 일관했을 때는 한국 신문이 손에 잡기도 싫을 정도로 그 내용이 지겨웠는데 이젠 월드컵 때문에 텅 비어버렸다는 한국의 선거연설회장의 군중처럼 싹 가셔버렸다.
한국 신문으로 보는 월드컵은 재미있다. 나는 최근에 이렇게 파안대소하고 많이 웃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에서 축구 열 때문에 김이 샌 프렌치 오픈 테니스 대회장에서 필립스 전자회사가 설치한 TV 화면에 나오는 축구경기 보려고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심지어 관중석에서 망원경으로 보려고 한다든가 테니스 선수 자신들도 마사지를 받으며 축구를 본다든가 등등.
“만약에”라는 웹사이트 이야기는 그중 제일 재미있었다. 별의별 승패 시나리오를 가상해놓고 한국의 대승리 경우에는 히딩크 감독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든가 단군신화도 물리치는 전설의 인물이 된다는 것인데 한국인들의 익살도 이젠 세계 수준이다.
LA 한인들이 빨간 셔츠를 입고 출근한 자리에서 어깨동무 나란히 “Go Korea!”하고 합창하는 사진을 보니 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며 나도 모르게 “우리는 한국인이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런 열광말고도 또한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게 많았다. 한국의 좋은 모습이다. 외국인을 오로지 실력 위주로 한국팀 감독으로 모셨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의 진취적인 새 모습인지 모른다 (정치 경제인들은 무인연, 무학연의 철저한 히딩크식 실력위주의 경영원칙을 새겨보고 있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들뜬 와중에도, 국민들의 정성으로 경기장 주변에 유지되는 질서정연한 분위기, 또 교통체증을 감소하기 위해 실시한 홀짝수 2부교통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더라도 주최국으로서의 친절과 위엄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승리가 문제가 아니다. 8강이, 16강이 아니면 어떠랴. IT 강국으로서의 진면모를 세계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무대가 된 이 대회는 그야말로 한국이 진정한 문화국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세계인의 눈앞에서 심판을 받는 자리다.
첫 승리는 달콤했다. 그러나 한국이 혹시 탈락하여 쓴잔을 마시게 되더라도 온 국민이 마음 굳게 먹고 당당한 패배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진짜로 승리하는 길이다. Go Korea! 위대한 승리가 아니면 당당한 패배를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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