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시작한 미국 천주교 신부들의 성 추문 사건이 아직도 타임과 LA타임스 등 미 언론에서 계속 기사화 되고 있다.
천주교 신부들이 가까이 하였던 어린 소녀나 소년들과의 관계가 10년, 20년 혹은 30년 후에 피해자들로부터 폭로되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의 총액이 천문학적 액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월 13일자 타임지에서는 “교회는 파산할 것인가?”라는 기사가 났으며 이미 수명의 주교, 신부는 감옥에 가 있고 흑인소년 스토우크는 9년 전 자신을(17세시에) 성추행했던 흑인 신부 블랙웰을 총을 쏘아 죽였으며 이미 신부 16명은 자살을 하였다.
드디어 지난 4월에는 미국주교 13명이 로마 바티칸으로 가서 교황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 하기까지 하였으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세울 수는 없었다. 왜 신부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성욕은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기가 불가능은 아니나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는 성욕은 생명체로써 종족본능을 위해 30억 년 이상 진화 유전되어온 세포 하나 하나의 DNA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예수도 “스스로 고자된 자도 있다고” 하였고 바울도 할 수만 있으면 임박한 종말의 환란을 위하여 자기처럼 혼자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나 정욕에 타는 것보다는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지난 5월 20일자 타임지에는 뉴멕시코 타오스의 천주교 신부 윌리엄 맥니콜러스가 지금 미국 신부들 중 게이가 15%에서 50%는 될 것이라고 하였다. 까만 수단을 입고 로만 칼라를 한 신부들 반이 게이라고 상상해 보라.
성욕의 본능은 천주교 신부들의 문제뿐만 아니다. 고려시대의 보조국사는 처음 중이 된 자들을 가르치는 글 심문(心文)에서 사당에 있을 때 어린 중과 같이 있지 말 것을 훈계했던 것은 역시 게이를 경계했던 것 이다.
성욕을 이기기가 그처럼 어려운데 어째서 천주교의 신부, 수사, 수녀나 불교의 승려들처럼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가? 그것은 정욕을 억제하는 것만큼 정신세계가 맑아지고 영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이 맑을수록 육체의 정욕은 멀어지고 정욕에 탐닉할수록 영의 문은 닫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경험으로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나 석가나 바울이나 불교의 선지식들이 하나같이 성욕을 그처럼 경계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성욕을 승화시켜 거룩한 깊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거스틴이나 프란시스코, 토마스 아퀴나스나 마더 테레사, 불교계의 기라성 같은 대덕 선지식들이 모두 이 계명을 철저히 지켜 초월한 경지에 들어갔던 것 이다.
종교의 생명은 경전의 권위나 특별한 교리나, 교회 혹은 사찰의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나 석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해온 유명 무명의 크리스천, 혹은 고승 대덕들을 통해 이어져 왔는데 최근 천주교 신부들의 성추행 소식을 듣고 보니 기독교의 앞날이 걱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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