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항상 변하고 삶의 방식도 변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 따라 특히 많이 변한 건 한국인의 아버지 상(像)이 아닌가 싶다. 옛날에는 군사부일체(君師夫一體)라며 아버지는 임금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그 권위와 위치가 대단했다.
지금은 아버지와 자녀가 같은 위치에서 함께 뒹굴고 하며 될수록 모든 것을 공유하는 추세로 달라졌다. 그런데도 한국사회에선 아직까지 아버지들이 자녀를 억누르고 군림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들은 자식들이 명령에 복종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따라주기를 강요한다.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만 뒤따라 먹는다 든가, 이야기할 때는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보다 고개를 낮추어 다소곳이 앉아듣는 것과 같은 식의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자식들의 잘못된 행위를 참다못해 방안에 가두거나 매질을 한다든지, 그것도 모자라 자식을 죽이는 패륜적인 사태까지 몰아오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변화되지 않는 데서 오는 비극적 결과이다.
단순히 표현해서 예전에는 집에서 훈계하는 게 아버지라 한다면 요즈음의 아버지는 돈 벌어다 빵 사오는 존재가 아닐 런지. 혹자는 이를 두고 아버지의 권한과 위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말하는데 실은 꼭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닌 것 같다.
옛날에는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의탁하고 해결했지만 지금은 어느 기간까지 부모가 길러주고 나면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는 추세로 바뀌면서 아버지의 책임과 역할은 한층 가벼워졌다. 이런 요즈음의 아버지를 가리켜 자식들로부터 소외됐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예전과 달리 자식들의 생활이 자율적이 되면서 아버지의 권위와 힘이 줄어들어 마치 위상이 추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자녀들의 능력이 많아짐에 따라 아버지의 부담도 그만큼 홀가분해졌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이제는 아버지가 장성한 자식을 보고 “적령기가 되었는데...” “빨리 짝을 찾아 가정을 꾸려야 할 텐데...” 하면서 공연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 나가는 그런 시대이다. 그러한 흐름을 무시하고 아버지란 이유만으로 자식들의 발목을 붙잡고 자신들이 원하는 틀 속에 넣어 숨막히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머리 속에 전통적인 고정관념만 고집하고 그 속에서만 생각하고 다루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아버지가 뜻하는 바, 목표대로 자식을 붙잡아 두려고 하는 것은 사고와 가정불화의 원인이다.
당장 생각이 맞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옛날 아버지는 물론 행동이 조금 잘못됐다 하여도 집안에서의 위상이 거의 절대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의 명령 한 마디면 집안의 기강이 금방 잡혀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뭉칠 수 있었고 가족간의 우의와 화목에도 보이지 않는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버지의 잣대로 자식을 재려기 보다는 자식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 권위적인 명령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문제를 내놓고 같이 얘기하고 토론하면서 관계를 좁혀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권위는 가지되, 푸근한 상담자로서, 때로는 인생을 오래 산 경험자로서 자녀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아버지로서 해야 할 몫이다.
지금은 권위만이 능사가 아니다. 월드컵 축구열기에 발맞춰 자식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 공이라도 한번 같이 찬다든가, 붉은 악마의 대열에 휩쓸려 잠시나마 아이들과 같이 목청을 돋우며 응원하는 그런 아버지 상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명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