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목회학 박사. 종교 전문기자>
6월이 지나고 7월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철로 들어간다. 지난주에는 수은주가 화씨 9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계속됐다. 한 낮, 서 너 차례 소나기가 퍼부었지만 더위를 가시게 하기에는 어림없었다. 6월 내내 불꽃 튀던 월드컵 제전도 끝나고 이제는 생업(生業) 즉, 일터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산다는 것 자체는 아주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삶은 생업을 바탕으로 이어진다. 각 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일하는 그 것이 바로 생업이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생의 자리 속에 자신이 있으며 가족이 있고 관계가 성립된다. 그 관계란 바로 삶의 이어짐 속에서 일어날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나의 관계 속에 있는 어느 시인은 문학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는 시집도 많이 펴냈다. 그의 시는 깊이가 있다. 부드럽다. 간결하다. 아름답다. 나이 60이 넘은 그의 시에는 그가 살아온 만큼 그의 삶이 녹아있음을 본다. 문학이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작가들은 그 삶에 치열하지 못할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이 시인은 삶에도 투철하다.
생업에 게으른 자가 아무리 좋은 시를 쓴다 한들 입술에 루즈를 칠한 꼴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렇지 않다. 이 시인은 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그리고 생업을 위해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한다. 그의 손을 보면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아니라 투박하다. 기계가 고장나면 손수 고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삶과 문학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열심을 다해 일하고 남들이 자는 시간에 시를 쓰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를 잘 써서 좋은 작품을 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작가가 백수건달(白手乾達)이라면 그의 시는 화류계 기생집 안방에 장식될 한 폭의 병풍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문학을 한다 하면서 생업에 열심 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다행히 미국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땅인 것만 같다. 척박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이민 문화 속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손을 벌리거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곳이 이 땅임을 이민 온 자들은 잘 알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관계의 지속이다. 그 관계는 가능성을 잉태하며 어느 순간엔 해산까지 하게 된다. 관계가 끊어진 삶은 죽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이 죽었다’란 그 말의 진의(眞意)는 ‘그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가졌던 모든 관계가 끊어졌다’ 란 말과도 상통한다. 관계의 지속 속에서 사람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발견해야만 한다.
길가다 보면 지하철이나 도로변에서 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요즘은 무더위 철이라 웃옷을 벗어붙이고 일을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생업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땀 흘려 일하는 그들의 뒤에는 가족이란 관계가 연결돼 있다. 일하는 자체는 자신을 위한 것도 되지만 가정을,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명분도 포함돼 있다.
어떤 경우 “저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직접 말을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도 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땀 흘리는 그 일을 나무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더 얄미울 때가 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그들이 비록 아름다운 시 한 줄을 못 짓는다 해도 그들은 아름답다. 시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시인이란 누구인가?”란 토론이 벌어질 때가 있다. 대답이 분분하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생(生)으로 태어난 인간이면 모두가 다 시인이다”라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바로 삶의 주인공들이 아닐까! 그런 사람은 삶으로 문학 자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생으로 시 자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대하다. 그들은 관계의 한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관계는 파괴가 아닌 건설이요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잉태이자 해산과정이다.
열심히 일하고, 지는 밤 새벽에 아름다운 시를 쓰는 회갑이 넘은 한 시인. 산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임을 그는 잘 보여주고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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