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간에도 힘이 균형을 잃고 한 곳으로 쏠릴 때 전개되는 상황은 우려할 만 하다. 구 소련의 붕괴에 따른 동구권 등 광범위한 공산권의 몰락은 미국을 절대적인 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지도적 위치에 선 사람의 처신이 쉽지 않듯이 지난 10여년간 정치·경제에서 문화·연예에 이르기까지 거의 독주하다시피 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운신이 더욱 어려워진 감이 없지 않다.
세계적으로 한창 유행인‘미국 때리기 운동’에 이제 한국도 노골적으로 동참하는 것 같다. 유럽이나 북한의 반미운동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므로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한국 사회 각 계층에서 번지고 있는 반미 추세는 양측이 모두 가볍게 볼 상황이 아니다. 지식층의 비판도 심각하지만 일반 대중의 반미의식은 섬뜩할 정도다. 예를 들면, 지난 번 월드컵의 한국-포르투갈 경기에서 한국이 졌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불평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인 즉 한국이 졌더라면 미국 대신 포르투갈이 한국과 함께 16강에 진출하는 건데 한국이 이기는 바람에 미국에 어부지리가 돌아갔다는 것이다. 한국의 도움(?)으로 미국이 탈락을 모면했으니 분통이 터진단다. 요즘 한국사회에선 미국인들을 일컫는 대명사에 보통‘놈’아니면‘놈 새끼들’등 거친 상소리가 붙어 다닌다. 이는 현재 미국에서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는 한인들이 듣기에 보통 민망한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원인은 세계적으로 미국이 욕을 먹고 있는 원인과는 다른 점이 많다. 미국이 세계 각 처에서 손가락질 받는 근본 이유는 단순히 초강대국(hyper-power)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문화는 좋든 나쁘든 어느 곳을 보더라도 엄청나게 침투해 있고, 경제적으로 보면 유럽 제국(EU)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더 크며, 군비 지출을 비교해 봐도 2위부터 9위까지 국가들의 군비 총액보다도 더 많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 위치는 옛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옛날 로마제국의 지배 영역은 지금 미국의 경우처럼 명실상부한 전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 날 미국이 가진 힘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미국이 가진 초강 세력 자체가 아닌가 한다. 즉 증오의 대상이 미국이나 미국인이라기 보다는 미국이 가진 힘으로 볼 수 있다. 한 곳에 집중된 거대한 힘은 생태적으로 타인의 질시를 받기 마련이지만 세력의 독점 자체가 내포하는 위험성은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미국의 건국 이념에 명시된 대로 삼권 분립을 주장한 배경도 바로 힘의 집중이 필연적으로 초래하게 될 위험과 유혹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보자는 숭고한 의도였다. 힘은 형태나 소속에 불구하고 적절한 견제가 없으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는 국제정치에서도 예외 일 수 없다.
미국 행정부는 명실공히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와 감시를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초강적 위치는 내부적 견제만으로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최근의 예로 미국 정부가 취한 철강재 수입규제를 위한 부당한 관세부과 조치를 들 수 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도 악법이지만 이로 인한 세계 자유무역주의 정신 및 실제 면에서의 악영향, 상대국의 반발과 대항조치 등을 감안한다면 장기적으로 미국경제에 득이 될 수 없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복합적인 것 같다.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제고와 미국문화의 만연에 따른 부작용이 얽힌 변화기적 현상이라고 본다면 너무 단순화한 낙관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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