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지난 달 세 차례에 걸쳐서 ABC방송의 나이트라인을 통해 “숨겨진 삶(Hidden Lives)”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탈북자들에 대한 실상보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원래 한국의 프리랜스 작가 김정은씨의 취재작품이다. 김씨는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그들에 대한 실상을 증언하기로 결심하고 1999년 3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중국 동북부의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소형 디지털 카메라에 탈북자들의 생생한 실상을 담아냈다.
한 시간이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 토굴을 파고 숨어사는 김간수씨 가족을 비롯해서 인간밀매꾼에게 팔려갔다가 도망친 여인의 기구한 사연,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들을 하나씩 남에게 넘겨주면서 절규하는 부모와 아이들의 몸부림 등을 고스란히 렌즈에 담아냈다. 테드 카플을 비롯한 나이트라인 제작진은 이 필름을 처음 보는 순간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필름을 처음 보는 순간 방영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토론이나 논의가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미 국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부터 나이트라인의 데스크에는 엄청난 메일이 폭주했다.
대부분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이야기다.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라는 반응들이었단다. 나 역시 이 방송을 보면서 외면할 수 없는 아픔으로 속울음을 울었다. 함께 보던 아내와 딸아이의 눈시울도 촉촉해졌음을 보았다. 그래 누구인들 외면할 수 있으랴.
ABC방송을 통해서 나타난 반응에서 보듯이 이제 북한의 탈북자 문제는 더 이상 망명신청자 한 두 사람씩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루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있을 중국과의 충돌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아니다. 이젠 이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 있다. 이미 탈북자는 30만 명이 넘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민족공동체의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애쓰고 있는 것은 몇몇 민간단체들과 선교사들뿐인 것처럼 보이는가? 왜 한국정부는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굳이 회피 또는 외면하려고 하는가? 난민지위 부여라든가 난민캠프 설치 등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야할 주체는 더 이상 NGO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다. 이미 미국의 의회에서도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개선을 촉구하고있는 탈북 난민의 인권에 대해서 유독 한국정부만은 그리도 소극적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입장에서 보면 탈북자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뜨거워도 뱉을 수 없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감싸안아야 할 내 핏줄의 생존문제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민족의 운명이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도 없이 남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졌던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내 민족의 운명을 다른 나라 의회의 결의안이나 NGO단체의 활동에 맡겨놓아야 할 것인가.
통일은 우리의 꿈이다. 어차피 우리는 북한의 2,300만 형제를 껴안아야 한다. 그런 우리가 30만 탈북자들을 껴안지 못한다면 우린 통일을 말할 자격도 없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