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사람은, 밤에 집에 와서 일단 주차장 안전지대에 들어서면 헤드라이트 불빛을 모두 끈다.주차장 지대가 높아 반 지하에 사는 사람의 방 유리창에 불빛이 비치면 TV를 보는 것은 물론 잠을 자는데도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차를 두어 번 이리 저리 옮겨 제자리에 주차한다.
또 밤늦은 시간 누군가를 바래다 줄 때는 그 사람이 연약한 여성이든 건장한 남성이든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차를 출발시킨다. 이것은 아주 사소하고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속에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요즘 플러싱 일대에는 한인 식당이나 마켓, 기타 영업을 새로 시작하는 업소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주말이면 공용주차장이나 상가 도로마다 샤핑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잡을 이루고 있다. 복잡한 곳일수록 한인들의 질서 의식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무질서의 극치를 이루는 몇 가지를 얘기하자면 첫째는 주차 문제이다.
차량 몇 대가 줄 서 있는데 자신이 먼저 빠져나가려 하다 오는 차, 가는 차 다 막아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엄연히 주차하려고 다른 차가 대기하고 있는데 모른 척 하고 새치기하여 먼저 차를 대버리는 사람이 있다.
또 버스 운전사가 빵빵거리며 경적을 계속 울려 창 밖을 내다보면 정류장 자리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있는 사람이 한인일 때 탑승자들이 “한국사람들은 말이야” 하고 흉보는 소리가 들릴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해진다.
둘째는 샤핑센터의 카트 문제이다.
한인마켓은 그래도 주차 요원이 있는 편이지만 서양 그로서리 경우 고객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간 카트를 차가 끌고 가는 사고를 목격하기도 했다. 조금 가다 차를 세운 운전자가 왕짜증을 내더니 카트를 주차장에 다시 내팽개치고 가는 것을 보았었다.
자신이 산 물건을 담았던 카트는 반드시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 바퀴가 달린 것이기에 이리 저리 굴러다니다가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남이 버리고 간 카트 일지라도 함부로 방치된 것은 반드시 끌어다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
셋째는 남을 방해하는 것이다. 좁은 통로에 카트를 세워놓고 주인은 없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지나갈 수 있는가. 카트를 한 옆으로 움직이지 않게 잘 치워 다른 사람의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하고 자신의 볼일을 재빨리 보아야 한다.
다들 계속 먼저 지나가려고만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선 채 계속 비켜주어야만 한다. 앞서가면서 남을 밀치고 그냥 가는 무감각도 버려야 할 유산이다. 1세들은 아마 2세로부터 ‘툭툭 부딪치고 그냥 가는 한국 사람 티를 제발 내지 말라’ 는 말을 여러 번 들었을 것이
다.
올바른 질서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샤핑 문화도 제대로 안다.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조용히 기다릴 줄도 알면서, 천천히 즐기면서 샤핑도 하는 것이다. 장터처럼 요란하게 서로 밀치고 새치기하면서 샤핑 하다보면 정신이 없어 꼭 사야할 물건도 빠뜨리게 되고 그야말로 샤핑이 무거운 가사노동이 되어버린다.
타인종인 경우 다시는 스트레스 받은 그 가게에 가고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매너가 없어.”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조금만 조심하면 될 일에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내가 아는 또 한사람은, 자신이 고르다 떨어뜨린 과실과 야채는 주워서 자신의 샤핑 카트 속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그 집 냉장고에는 멍든 과일이나 뭉개진 야채가 가끔 있다. 몇 푼 갖고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덮어씌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상인의 윤리가 있겠지만 소비자는 소비자의 윤리가 있는 것이다. 가장 우선적인 것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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