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월남을 다녀왔다. 30년만이었다. 길지는 않을 수 있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탄선웃 공항에서 시내를 향하는 택시의 창 밖으로 보이는 어둠 속의 도시는 30년 전의 모습과 겹쳐서 묘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기억의 단편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엊그제의 일 같은 것들 하나 하나가 모두 30년씩이나 묵은 것들이라니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공항과 관련한 아주 특별한 기억을 찾아냈다. 당시 나는 주월 한국군 소속 육군 병사였다.
그 해 사이공에 있던 주월 사령부에서는 추석 특별 프로그램 인가로 군가중창대회를 개최했다. 칼을 간 각 부대 대표들이 경연장인 사령부로 집결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여유 앞에 같은 군인으로도 존경심이 우러났다. 최전선 군인들의 음악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절도 있는 동작과 완벽한 화음으로 9인조 해병 중창단은 우승을 하였다. 그것은 이의가 제기될 수 없는 승리였다.
내가 운 좋게도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은 공항으로 가는 사령부 소속 셔틀버스에서였다. 그들은 우승트로피를 안고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나트랑으로 가는 출장 길이었다. 함께 타고 있던 군인들의 요청으로 즉석 음악회가 열렸다. 그들의 음악적 수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던 해병대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니 그것이 해병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앙코르가 계속되었다.
버스 속의 작은 음악회는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지휘자와 중창단이 다음 곡의 협의를 하는 동안 군인들은 기대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유는 노래 때문이었다. 그 곡은 그때까지의 군가나 가곡 등의 노래와는 차원이 다른 다름 아닌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아닌 노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웃고만 있지 못했다. 우리는 이 노래를 술이 취해했다. 그것은 기습이었다. 나는 이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갖고 있는지 조금도 상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모두는 숨을 죽인 채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색다른 감동이었다. 2절의 인천의 감빵(건빵) 공장아가씨로 중창이 마무리 됐을 때 버스 안은 환호와 박수소리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시내를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미소지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조그맣게 불러보았다. 다시 한번 그들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세월이라는 단어가 그날 따라 더욱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추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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