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내가 남편 다리를 좀 건드렸나 봐요. 남편이 발로 내 다리를 ‘뻥’차는 거예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부끄러움도 잊은 채 호소하는 듯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은 “아까 아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엄마를 보고도 오지 않고 도망을 가더라구요. 그런 나쁜 놈이 어디 있어요” 남편을 얘기할 때는 몹시 슬퍼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들에 대해 말할 때는 괘씸한 듯 화가 난 강경한 어조였다.
나도 같이 슬퍼하고 있던 참인데 아들 말이 나올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줌마 그 아들이 도망간 건 아줌마한테도 책임은 있어요!” “왜요?” “…” 이해할 수 없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그 이유를 말한다면 슬픔에 슬픔을 더 안겨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 괘씸스레 생각하고 있던 그녀의 남편을 보게 되었고 인사와 함께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선 단정한 옷차림에 성실함이 돋보이는 평범하면서도 매너까지 겸비한 그를 짧은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괜찮은 남편인데 자다가 부인의 다리는 왜 찼을까? 궁금해하면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민생활에서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은 ‘가게’일에서부터 집안일, 거기다 자녀까지 돌보아야하는 1인 3역을 소화해 내야하기에, 머리에 빗질도 못하고 화장은 더더욱 못하며 옷차림 역시 손에 닿는 대로 입다보니 형편없는 여자의 몰골로 변해 가는 것이다.
“우리 남편요? 말도 마세요.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요. 저 힘든 정원 일도 제가 다하죠” “전 힘이 없어서 삽질은 남편이 하고 꽃은 제가 심어요”란 단순한 말에 그녀는 부러워서 한 참을 쳐다본다. 남편들은 남을 부러워하는 내 아내를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지…!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아닐까한다. 그 위안의 말은 마음에 맺혔던 서러운 가슴을 따뜻이 녹일 것이기 때문이다.
집과 여성은 가꾸어야 된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 여성들은 자신을 가꾸는 데 게으름을 피워서는 아니 되겠다. 단정히 차려입은 예쁜 엄마를 본 아들은 “엄마, 나야”하고 달려올 것이고,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부인의 다리를 걷어찰 남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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