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라면 머리를 눕히고 자는 형용사가 앞에 없는 베개, 목 베개와 팔 베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눈 베개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샤핑을 하다가 Nature Store에 들린 적이 있다. 군데군데 대나무 광주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광주리 안에는 헝겊으로 만든 여러 마리의 회색 dolphin들이 있었다. 약간 웃는 모습을 하고 있어 보니, 눈 베개라는 종이 푯말이 붙여져 있었다. 갖가지의 곡류와 약초가 몸 속에 들어 있었는지 만지면 찰 좁쌀이 들어있는 듯 손가락에 감촉이 닿았다.

하도 신기하여 한 마리 사온 것이다. 밤에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다가, 혹은 TV를 시청하다가 자다보면 눈이 피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로 솔 솔 흘러 들어오는 약초향기는 동양의 신비함을 전해주는 듯하였다.

얼마 전에 시력교정수술을 받은 나의 두 눈은 아직 백 퍼센트 회복된 것 같지 않다. 컴퓨터 모니터를 30분만 봐도 눈이 충혈 된다. 콘택트 렌즈나 안경은 쓰지 않아 살 것 같으나 잠을 푹 자고 난 다음날도 눈이 피로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언젠가는 잘 삶아진 뜨뜻한 옥수수를 먹다가 아무도 안보는 틈을 내어 눈 위에 살짝 놓아본 적이 있었다. 따뜻하여 눈이 시원했던 기억이 있다. 몇 번은 전기 히팅패드를 눈 위에, 아니 얼굴 위에 펼쳐놓고 눈을 간호해 보기도 했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눈 베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만 한 사실이었다. 하루는 눈 베개를 가지고 알마덴 벨리에 사시는 어머니 댁으로 갔다. 어머니의 눈은 심한 당뇨병으로 정기적 방사선 치료를 받고 계시기에 내 눈 마냥 붉게 충혈 된 날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얘야, 이게 뭐냐?...dolphin 인데, 아이들 장난감이냐? 포근한 솜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뭐가 만져 지는 구나... 근데 웬 약초냄새냐?..." 이러한 대화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엄마 이게 뭔지 알아?"했더니 어머니는 그야말로 단숨에 "어어 그거 눈 베개구나"하셨다.

글쎄 눈 베개라는 것이 여태껏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얼마 후 다시 한번 Nature Store에 다녀왔다. 눈 베개를 사기 위해서였다. 눈 베개가 어제오늘의 물건이 아니라면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동물모양의 종류가 아닌 것도 있을 듯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내가 dolphin을 죽인 것이다. 눈 베개에는 물빨래를 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dolphin을 빨래 기계 속으로 던진 것이다.

세상에. 빨래를 마친 기계에서 나온 dolphin 은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지. 마른 곡류를 물 속에 흠뻑 담겨 논 격이니 말이다.
그 후 어머니는 한국서 여행오신 외할머니와 고모 할머니에게도 눈 베개를 선물해 주셨다. 외삼촌이 오셨을 때도 그러셨다. "애, 이사벨라야, 삼촌이 밤에 잠을 잘 못 자는구나. 혹시 눈 베개 하나 사올 수 있느냐?" 하셔서 눈 베개를 사 드리기도 했다. 외삼촌도 눈 베개를 하니 잠을 좀 더 수월하게 잘 수 있었다며 좋아하셨다.

내 몫으로 새로 산 것과 어른들께 전해드린 눈 베개는 직사각형 모양의 일본풍이 풍기는 것이었지만 미국에서 만든 눈 베개이다. 약초가 더 들어간 듯하고 박하 종류도 있는지 눈 위에 놓으면 시원한 박하사탕이 입안에서 설설 녹는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눈 베개를 볼 때마다 어찌하여 나는 그 존재 사실을 몰랐는지 아직도 신기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