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일컬어 사회학자들은 후기 산업사회, 후기 자본주의 시대, 제3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는 대변혁의 시대라고들 한다. 오늘의 시대는 맥루한이 지적한 것처럼 활자문명에서 전자문명에로의 전환이며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한 마을의 일원이 되는 지구촌의 시대라는 말로 압축된다. 지구촌시대란 국가의 장벽이 허물어진 시대다. 전파를 타고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의 문화는 민족문화니 국민문화니 하는 지역문화주의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
어느 시대나 경계 세우기와 경계 허물기가 길항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대체로 그 분기점은 급격한 시대 변화와 상동성을 갖는다.
1930년 이상의 경우는 시문학파가 보여준 자연과의 연속성을 거부하지만, 주지주의가 보여준 도시와의 관계, 심지어는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단절시킨다. 그리하여 그가 탐색한 세계는 추상화된 공간이거나 불안한 무의식의 심리적 공간이다.
아방가르드적인 모더니즘은 1950년를 전후하여 후반기 동인의 박인환, 김경린, 조향, 김규동 등과 김수영, 김춘수로 이어진다. 그중 조향의 초현실주의, 김춘수의 무의미시 등은 전 시대를 계승하면서도 이들의 해체적 방법은 상당히 문단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1980년대부터 한국은 다국적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렸고,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은 활자문명에서 전자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이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한 문화적 경계의 허물기와 모더니즘적 가치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80년대부터 한국 시단에는 갖가지 해체시법이 시도된다. 박남철, 황지우 등의 시들은 그 형태의 해체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해체시의 양상은 90년대를 넘으면서 메타시라는 또 다른 방식을 모색한다. 메타시는 시에 관한 시쓰기라는 일종의 장르 혼합, 또는 패러디의 한 양상이다. 메타시가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으로는 언어나 영상 매체가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시대, 조작하는 시대, 따라서 현실이 소멸하는 시대적 특성이 강조된다.
소련의 해체, 문민정부의 출현, 후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더 이상 말과 사물이 일치하는 이성주의나 전체주의적 거대담론의 시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좌절과 허탈에서 최초의 목청은 진지한 자기반성일 수밖에 없었다.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분명 80년대 이념의 범람에 편승했던 한 젊음의 기록이며, 그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90년대의 출발점으로 삼은 자의 노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성은 김지하의 시집 ‘중심의 괴로움’에서도 들어나거니와 김정한, 박노해 등의 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1990년대 리얼리즘시는 일정한 자기 반성을 거치면서 서정성의 회복과 언어미학 탐구 등의 시의 본질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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