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다시 실용주의적 가치관과 방법으로 발전시켜 오늘의 미국을 건설했다. 어떻게 보면 경험주의의 뿌리에서 공리정신의 줄기가 자라고 실용주의의 결실을 얻게 된 것이 앵글로 아메리칸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어떤 역사의 과정을 밝아 왔는가.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중국에서 전래한 유교와 주자학을 중심 가치관으로 받아 들였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주자학은 형식논리에 속한다. 우리가 수용한 유교의 정신은 인간적 삶의 도리보다는 교조주의를 종교적 성격화 시켰고 공자 등의 교훈을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뜻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형식과 규례로 교리화시키는 일에 치우쳤다.
이러한 형식논리와 교조주의가 합쳐져 형성된 사고방식이 사물에 대한 양분법 즉 흑백논리가 된 것이다. 나와 우리는 백까지 옳으며 너와 상대방은 영이라는 양극논리였던 것이다. 사실 흑과 백은 이론으로는 가능하나 실재하지는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중간의 회색일 뿐이다.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있을 뿐이다.
경험론자들은 삶의 현실이나 사회적 현상을 취급할 때 현존하는 중간색을 문제삼았으나 우리는 없는 흑백이론으로 만사를 처리했던 것이다. 우리가 증오하는 회색분자 개념이나 50보 100보 차이일 뿐이라는 사고가 그것을 말한다. 그 결과가 500년 동안의 파벌싸움을 유도해 왔고 지금도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나 노사분규의 양상이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와 다른 것은 용납하지 못하며 우리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편은 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남북관계도 그런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흑백논리가 우리 선조들에게는 정치권력의 독점의욕으로 전개되면서 탄생한 것이 본능적인 이기집단,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는 왕권을 중심 삼는 권력이 유일한 지배층의 목표였기 때문에 권력집단을 위한 세력다툼은 자취를 감추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는 우리 사회를 폐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면서도 내분과 싸움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먼저 지적한 영국의 공리주의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한 윤리성과 공동선의 가치관을 확장시켜갔음에 비한다면 집단이기주의는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가치관에서 볼 때 암적인 사회악일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발상과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21세기 세계 무대에 등단할 자격이 없다.
(김형석/연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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