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살면서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나 편한 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여름엔 반바지 하나, 겨울엔 청바지 하나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일년을 편하게 날 수 있는 간편하고 소박한 즐거움이 미국 생활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나 생긴 모습대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컴맹이라는 사실이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지 뭐, 하고 치부하며 컴퓨터에 무식하다는 사실을 별로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우리 집에도 남의 집에 다 있다는 컴퓨터가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고 게임부터 시작해서 이젠 제법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소위 ‘요즘 아이’들이 되었다.
아들아이가 리포트를 만들다가 컴퓨터에 뭔가가 잘못되었다며 집안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내게 물어왔을 때 컴퓨터를 어떻게 켜는지 어떻게 끄는지도 모르던 무식한 엄마는 얼마나 당황하고 망신스러웠던지 결국 유행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뒷장서 가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까운 윌셔 거리에 있는 학교의 컴퓨터 강좌에 등록을 하고 온 날 우선은 과연 생소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컴퓨터와 친해질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이나 한다는 컴퓨터 공부를 이제 와서 왜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강의실에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중년의 아줌마들을 보고 안심을 했다. 할머니 소리를 반드시 들을 것만 같은 연장자들을 보고는 나의 근심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이었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적기라는 둥, 포기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노력을 하면 반드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둥, 어려서부터 주워들은 좋은 얘기를 다 늘어놓았던 엄마였지만 막상 그 좋은 말들을 나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컴퓨터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다른 소모적인 일보다 새롭고 젊은 지식을 배운다는 것이 더욱 근사한 경험이 된다.
컴퓨터에 앉아 숙제를 하고 문서를 만들고 은행 어카운트를 정리하면서 2002년을 당당히 살아가는 멋쟁이 아줌마가 되어보겠다는 꿈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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