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잠 깨이는 밤이면 도시의 소음마저 가라앉은 적막감 속에서 나는 한참동안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사색과 명상에 잠기곤 한다. 이제 삶의 현장을 비켜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 속에서 지난 70년을 살아오며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되새겨 보면서 운명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내 육신과 영혼을 보듬어 주시던 어머니의 사랑과 철 따라 어린 영혼에 물감 들여 다듬던 순진무구하던 어린 시절을 어쩌다 미국 땅에 와서 순천명에 이르러 소아적 감상에 취하여 향수에 잠기고 있는지.
내가 어릴 적 즐겨 놀던 뒤뜰 채전 가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감 꽃이 필 때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떨어진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누이와 가위 바위 보로 떼어먹기 놀이를 즐겼고 또 담장 가의 호박꽃 안에 왕벌이 정신 없이 몸에 꽃가루를 분칠할 때면 물래 꽃잎을 오므려 싸서 귀에 대고 앵앵되는 몸부림 소리를 듣다가 꽃잎이 찢어 벌이 금방 나올 것 같으면 얼른 풀어주곤 했다.
그리고 초가 지붕 위에는 하얀 박꽃이 청아하게 피어 있었고 지붕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비추다가 그늘지는 무렵이면 뒤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한가로이 피어올라 평온한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내 눈앞에 형상화해 보인다.
그러나 그 초가집은 6.25전쟁 때 미군의 오폭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아버지가 다시 큰 기와집을 세워서 나의 두 아이가 거기서 태어났지만 나는 나의 초가집을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어머니 나를 잉태하시고 거지의 동냥 바가지에 그릇 밥 나누어주던 마음을 내 영혼에 심어주셔 나는 마음속에 욕심을 심지 않고 낭만을 담았다. “저 밝은 달 속에 초가 삼간 집을 지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그러나 3년 전 20여년만에 찾아갔던 내 고향은 사람들도 마을도 너무 낯설어 혹시나 잘못 찾지 않았나 할 만큼 흥분이 가셨다. 이제 고향을 잃어버리고 내 마음은 여기도 거기에도 나그네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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