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하였다는 기사를 착잡한 심정으로 읽는다. 멀지 않은 시기에 북한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조약을 맺을 터인데 벌써부터 이곳 저곳에서 보이는 조짐이 북한 역시 남한의 박정희 정권이 했던 대로 원칙보다는 우선 급한 돈을 취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북한이 박정희 정권의 전철을 따른다면 우리 한 민족이 일제의 불법적인 강압 속에서 받아야만 했던 굴욕과 수모에 대한 기록을 바로 잡을 역사적인 기회를 또 다시 놓치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는 법정통역사로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제 치하의 강제 징용 노동자 배상청구 소송의 증언 청취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이들 소송에서 줄기차게 일본측이 주장하고 미국 정부가 일본의 손을 들어 주는 점은 첫째, 일본이 행한 주권 국가로서의 합법적인 행위는 면책특권을 누린다는 것과 둘째,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일체의 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이 다 그 근거를 1965년에 맺어진 조약과 협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 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 일본 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 하게 한일합방조약을 무효화한 것 같지만 이 이미 무효라는 구절에는 언제부터 무효라는 것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한국 측에서는 강압에 의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서명날인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불법 조약으로서 애초부터 무효였었다는 해석이고 일본측에서는 1910년부터 1948년까지 유효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순간 무효화 했다는 해석이다. 즉 일본측 주장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모든 과정이 합법적이었다는 말이다.
기본 조약과 같은 날 조인된 청구권 협정의 제 2조 1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해석으로는 이 구절은 국가로서의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일본 정부의 해석은 당연히 그 반대이다. 박정희 정권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합계 5억 달러의 소위 독립 경축기금을 받고 위의 두 가지 모호한 조항들을 수락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치를 떨며 반대하던 구절들이다.
결국 역대의 일본 총리들이 한국 정부의 압력 밑에서 소위 사과를 되풀이 하였고 고이즈미 총리 역시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밝힌다고 하였지만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괴로움을 끼쳐 죄송하기는 하지만 불법적인 행위를 한 일은 없다는 것인데 과연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 때부터 되풀이 해오던 일본의 불법합병을 관철시킬 뚝심이 있는지 염려스럽다.
군인, 군속, 노무자, 정신대, 위안부, 보국대, 포로감시원, 군부 등의 갖가지 해괴한 이름으로 일제에 끌려 간 피징용인들의 정확한 숫자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자들의 추산은 200만부터 600만이었으리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 내지 30%가 직접적인 피해자인 셈인데 그들의 억울함을 배상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과연 김정일 이 확보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한번 굴욕적인 돈의 외교가 되풀이될 것인지 불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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