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과학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알게 모르게 과학의 영향을 받거나 과학에 신세를 지고 산다. 옛날엔 구름과 바람을 보고 그날 날씨를 어림잡았지만 지금은 기상대가 인공위성을 이용해 일기를 쪽집개처럼 예보한다. 우리가 먹는 식품도 자연 농산품보다 공산품이 더 많을 지경이다.
과학발전의 원동력은 호기심과 공포라고 한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9·11 테러사건 이후 쏟아져 나온 신 발명품들 가운데는 고층건물 근무자들을 겨냥한 탈출용 낙하산도 있고 공항 검색대를 자주 통과하는 여성 여행자들을 위해 철제를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모델의 브래지어도 있다고 들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의 소산이다
한동안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연쇄 저격사건 용의자를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검거한 당국의 쾌거도 과학을 이용한 수사 덕분이었다. 워싱턴 DC에서 타코마까지 신속하게 커버하는 정보통신 네트웍과 범행에 사용된 탄환의 탄도검사 등 증거물의 과학적 분석으로 14번째로 희생될 뻔한 어린이들을 살인마의 덫에서 구제할 수 있었다.
과학은 신비를 풀어내는 데 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영원한 신비의 대상인 인체와 우주 사이의 유사성이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다. 은하계에 있는 천억여 개의 별 숫자와 인체내의 원자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별-은하계-우주’의 구조관계가‘원자-세포-인간’의 관계로 대입될 수 있다. 우주의 주성분 원소인 수소가 인체에서도 주성분 원소이다.
그런데, 옛부터 과학발달의 기초가 된 것이 수학이다. 수학은 음악과 함께 재능이 가장 일찍 피어나는 분야라고 한다. 이 달 25일(1811년)은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에비리스트 갈루아가 파리 근교서 태어난 날이다. 갈루아는 고작 21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놀라운 과학적 공헌을 이루었다. 약관 16~21세의 5년 동안 작성한 60 페이지 짜리 수학이론서를 통해 갈루아는 대수방정식이 대수적 해법만으로 풀리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밝혀냈다.
인간적으로 갈루아는 동시대인들보다 별난 삶을 살았다. 그는 파리 이공대학교의 입학시험에 연거푸 떨어져 결국 진학을 포기했다. 천재이면서도 둔재 마냥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의 낙방은 그가 제출한 입학논문들이 학사원 담당자들의 부주의로 오랫동안 책상서랍 속에 방치됐기 때문이었다. 수학도면서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갈루아는 프랑스 7월 혁명을 전후해 투옥됐다. 그는 별 볼 일없는 여자를 두고 연적과 권총 결투를 벌였다가 생명을 잃었다. 세상은 이 사건을 두고 갈루아가 경찰이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라고 추측했다.
갈루아보다 수백년 전에 세종대왕이 수학을 공부한 사실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당시‘계몽산’을 배우던 세종이 부제학 정인지에게“산수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 없을 듯 하지만 나는 공부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종의 수학교과서인 계몽산은 원나라 주세걸이 지은‘산학계몽’을 원본으로 한 수학 책으로 곱셈, 나눗셈, 무게단위 환산, 도량형의 표시, 농토의 측량단위, 원주율, 분수 등이 포함돼 있다.
지엄한 임금님이 머리를 싸매고 수학문제를 푸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요즘의 대통령이 수학 정석 문제집을 푸는 것과 비슷한 모양일 것이다. 전제주의 군주인 세종은 굳이 스스로 수학을 배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이 수학문제를 풀고, 수학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수학 책을 인쇄했던 그 시대가 바로 조선왕조의 전성기였다.
몸소 수학을 공부한 세종에게서는 향학열과 함께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일본의 두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찾아온 기자들에게“혹시 착각한 것 아니냐?”며 짐짓 반문했다는 것도 겸손의 발로이다.
마침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이 시애틀을 다녀갔다. 앞으로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타는 한인 2세가 나오기를 기대해 볼만하다. 미국서는 그럴 가능성이 한국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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