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첫 올림픽 금메달은 몬트리올 올림픽 때 양정모 선수에게서 나왔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이 뉴스를 알게 된 한인 간호사는 TV 앞에서 환성을 질렀다. 환호가 거의 비명 수준이었기 때문일까. 미국인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네 친척이니? 네 친구가 금메달 땄어?”
“아니, 저 사람 한국사람이야”
코리언이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만으로 환호하는 코리언-. 동료들은 어깨를 으쓱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을 주고 받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17년 전 샌디에고 델마 인근의 5번 프리웨이. 눈에 익은 작은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바짝 따라가 보니 캐나다 번호판을 단 현대 포니였다. 10마일 이상을 쫓아가며 한국 차가 미국 프리웨이를 질주하는 이색 광경을 지켜봤다. 남들은 뭐라고 하든 뿌듯하고 대견한 일이었다.
그 2년 뒨가 한국 차가 미국에 첫 진출하자 앞뒤 재지 않고 현대 엑셀을 사는 사람이 꽤 많았다. 물론 품질에 비하면 값이 쌌기 때문이나 가격만이‘바이 코리언’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 때 현대 엑셀보다 더 쌌던 차는 유고산 수입차였다. 엑셀 기본형이 4,999달러일 때 유고는 3,999달러. 하지만 유고를 샀다는 한인은 본 적이 없다.
미국의 한국차 판매법인들은 전체 바이어의 2% 내외를 한인으로 보고 있다. 많지 않은 숫자이긴 하나 한국차를 산 한인은 숫자 이상의 의미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람이 찾지 않는 한국차를 누가 사겠느냐”고 하는 한 한국차 딜러의 말은 그점에서 상당히 일리있게 들린다.
미주 한인이 100만인지, 한국정부의 추산처럼 250만을 넘는지 알 수 없긴 하나 미주 한인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 100만개의 입이 일제히 현대 차를 칭찬해 대면 동네가 시끄럽지 않을까.
이런 한국 사람들을 하나로 묶자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임을 갖고 있는 세계무역인협회(월드옥타), 한상대회를 개최했던 동포재단, 세계상공인총련 등의 공통화두는 모두‘한민족 네트웍’이다.
한민족 네트웍은 미안하지만 ‘해외동포의 복리’를 염두에 두고 나온 개념은 아니다. 해외동포 정책 이래야 대북 정책의 하위개념 정도로나 인식하고 있던 나라답게 한국정부는 IMF 사태가 벌어지자 부랴부랴 한민족 네트웍을 들고 나왔다.
해외동포를 정치적으로는 관리대상, 경제적으로는 한국상품 판매망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지만 한민족 네트웍은 한국의 해외 마케팅 전략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추진기관이나 단체중에는 정권 실세의 해외 네트웍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지나치게 편향적인 곳도 있었다. 이번처럼 월드옥타가 총회를 갖는데 유사성격의 한상대회를 정부 출자기관인 동포재단이 갖는다는 것도 한 건 주의나 남의 공 가로채기로 비쳐질 수도 있어 흔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한민족 네트웍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선 한국기업의 태도에 있다. 코리언의 금메달이면 무조건 환호하고, 프리웨이의 한국 차를 따라가며 뿌듯해 하는 코리언 정서를 활용하는데 절대 다수의 미주 진출 한국기업은 무관심하거나 실패하고 있다. 그 증세가 너무 심해 오히려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리언 정서 활용은 프로 장사꾼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한민족 네트웍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가주의 한국기업 중 이점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안상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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