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걸린 갓난아기의 기침 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밥 몇 숟가락을 먹였다면 그날 하루 큰 일 한 것 같고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 아이 천재인가 봐’ 하며 감탄한다는 부모 마음.
그렇게 키운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는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부모와 공통된 대화가 줄어들고 또래 기분을 가족보다 더 잘 이해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는 정도가 높아진다.
남의 집 아이들은 수석졸업도 잘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조기 입학하여 신문에도 나고 여러 가지 재능으로 각종 상도 타는데 왜 우리 아이는 평범할까 하는 부모의 불만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다.
남들은 학원 한번 안 보냈어도 공부만 잘한다는데, 또 누구는 공부하라는 소리 한번 한적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잘했다는데 ‘공부 언제 할거야?’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며 화를 내기도 한다.
“집에서 매일 TV만 볼 거야?”, “컴퓨터 앞에서 에세이 쓴다면서 매일 친구와 채팅만 하지?”, “도대체 바이올린 연습은 하는 거야? 안하는거야?”, “책을 많이 읽어야 에세이 잘 쓴다는 것 몰라?”하루종일 나가서 일하는 부모와 아이가 저녁에야 겨우 얼굴이 마주치는데 부모는 일단 눈에 거슬리는 것부터 지적하게 되고 아이는 매일 반복되는 부모의 잔소리를 훤히 꿰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남들보다 예쁘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아서 좋고 공부도 썩 잘하지 않고 어느 정도 하니 사립대학이나 전문직 시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같고 남들처럼 아이들 위해 희생했다는 말 할 걱정 안해도 되니 여러모로 괜찮다.
“네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더라”하면서 연습을 유도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 ‘연습 좀 하라’는 소리가 하기 싫어 바이올린이고 피아노고 모두 어느 정도 가르치다가 레슨을 중단시켰다.그러니 방과후 학교를 가나, 음악이나 스포츠를 배우러 가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현관에 가방을 던지고는 둘이서 자기네 세상이다.
TV 코미디 프로나 뮤직 비디오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컴퓨터 앞에 껌처럼 붙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로 밤늦게나 새벽에 숙제하느라고 난리다.이렇게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있는 판인데 한달 전쯤, 11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칼리지 투어를 간다고 한다.
일정을 보니 내심 아이가 갔으면 하는 학교가 빠져있어 다음 기회에 가라고 했더니 자기도 학교 투어는 별 관심 없지만 친구들이 다 가므로 함께 밤새워 이야기하며 놀고싶단다.친구 따라 강남 가겠다는 그 이유가 어이없었지만 그 나이에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가라고 했는데 막판에 가장 친한 친구가 못 가게 되었으니 자신도 안가겠다고 했다.
잘됐다 하고 잊어버렸는데 며칠 전 칼리지 투어를 하던 일행 중 중국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는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겁나 하며 조심스레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아이는 칼리지 투어 가기 전날 자기와 말한 적도 있다며 쉽게 그 충격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접한 죽음의 기억은 오래 갈 것이다. 뭐라 위로할 지 난감해지며 불쑥 한 말이 “공부 못해도 좋아, 아프지만 말아”였다. 한국의 광고 카피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를 이때 써먹었다면 나, 욕먹을까? 함께 갔던 친구들이 얼마나 혼비백산했을 것이며 학교 관계자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또 겨우 16년을 산 그 아이는, 그 부모는 얼마나 가여운가?
그런데 남의 일이라고 자기아이 챙기기 급급한 극도의 이기주의자 모습을 나타내고 말았다. 또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말 더 이상 못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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