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10월9일을 기점으로 주식 시장이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이라크와의 전쟁 등의 가능성 때문에 어려움이 더 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도 나온다.
연말을 맞아 한인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경제다. 각종 모임은 물론 몇 사람만 자리를 함께 해도 ‘언제쯤 경제가 괜찮아질 것 같은가’라는 이야기가 화두다. 이처럼 어려운 때를 맞아 미국 주류 사회에서 능력을 평가받고 있는 한인 경제 전문가 3인을 통해 미국 경제를 진단해보고 뉴욕 한인 경제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구해본다. <편집자주>
웰스파고 은행 부행장이자 수석 경제학자인 손성원 박사는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2003년 후반기에 가서야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현재 시장 신뢰도가 땅에 떨어져 있는 데다 각종 악재가 산적해 당분간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 박사는 현재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악재로 자동차 판매 부진, 주식 시장 침체를 꼽았다. "자동차 회사들의 ‘제로 파이낸싱’은 항생제와도 같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이 생겨 약발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제로 파이낸싱’ 덕분에 늘어났던 자동차 판매가 최근 내려가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제로 파이낸싱’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그나마 미국 경제
를 지탱해왔던 소비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식 시장 침체와 관련해서는 "기업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 경영자들이 대부분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데 2년에 걸친 가격 폭락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재고 수준을 낮추는가 하면 설비 투자마저 꺼리는 경향이다. 결국 주식시장 침체가 최고 경영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 기업이 위축되고 이로 인해 노동 시장이 얼어붙고 결국
소비마저 움츠러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손 박사가 내년 후반기 경기 회복을 점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는데 큰 부담을 느껴 재고 수준이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이르렀고 적정 재고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1999년 Y2K 때문에 교체한 컴퓨터 시스템 등을 비롯해 각종 생산 시설이 낡아 설비 투자에 대한 요구도 절박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낮은 모기지 이자율 덕분에 상승한 부동산 가격도 호재다. "일반인들에게 주식가격 하락은 큰 영향이 없다. 오히려 집 값이 올라간 게 도움이 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벌었다고 느낀 사람들이 소비를 증가시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82년 한때 11%에 육박했던 실업률과 비교해 현재의 5%대 실업률은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어서 내년 하반기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손 박사는 무엇보다도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 회복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자율이 문제가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확신이 부족한 때문이다.
기업들도 확신이 없어서 돈을 쓰지 못하고 있다. 테러, 경기후퇴, 기업들의 회계부정, 이라크와의 전쟁 가능성 등이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전쟁이야말로 사람들의 심리에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전쟁 가능성만 없어진다고 해도 당장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박사는 "여유가 있다면 지금 주식을 사는 것도 좋은 투자의 방법"이라며 "하지만 주택 구입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좋은 회사들의 주식이 많이 내려가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에 좋은 시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많은 만큼 유동성을 확보해 사업 부진이나 실직 등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한다. 더구나 과거에는 앞날을 예측하고 주식을 샀
지만 요즘에는 이익은 적더라도 안전한 투자를 선호하는 만큼 확실하게 경제가 분명하게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을 확인한 뒤 주식을 사는 것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 손성원 박사는?
서울 출생으로 피츠버그 대학,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백악관 경제담당 비서관과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2001년 블룸버그 뉴스에서 ‘미국 최고 경제 전문가 5인’으로 선정됐고 2002년에는 타임지가 뽑은 ‘경제학자(Board of Economists)’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2002년 블루칩 연구소는 미 서부지역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손 박사를 뽑았다. 현재 손 박사는 미국 5대 은행의 하나인 웰스 파고 은행(Wells Fargo Banks)의 부행장이자 수석 경제학자로 각종 경제단체 및 사회단체에서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래준 기자>
jraju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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