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화제작 영화 ‘집으로’를 보았다. 어느 여름 동안 산골에 홀로 사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손자의 이야기이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할머니와 답답한 시골 환경에 짜증만 내던 손자 상우가 차츰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주된 주제는 외할머니의 사랑이지만 영화 속의 상우 외할머니가 청각장애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사회학적인 조명을 하게 되었다.
우선 할머니가 수화로 가슴을 부비며 미안함을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연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입 다물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만 청각장애인의 삶을 그렸다. 마치 청각장애인들은 말 안하고 입 다물고 살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처럼, 그리고 말하는 것을 아예 초월한 사람처럼 그려져 있다. 연기자도 아닌 평범한 시골 할머니에게 청각장애인 연기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일반 대중들을 감동시키기엔 충분했는지 몰라도 장애인들을 일반대중에게 이해시키는 역할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본다.
청각장애인들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 욕구마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청각장애인의 내면을 연기로 표현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사회가 바라보는 장애인관에 대한 시대적 반영은 충실히 했다고 본다. 상우 엄마가 자기 어머니를 외딴 산골마을에 버려놓다시피 했고 찾아보지도 않다가 자기의 형편에 따라 아이를 잠시 맡기는 영화의 장면은 바로 사회가 장애인들을 얼마나 배타시 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딸마저 장애인 부모와 함께 따뜻하게 살 수 없는 사회이다.
손자인 상우의 입에서 조차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병신’이라는 말. 아이를 맡기고 찾아 가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 딸의 태도. 집에 가자며 아들의 손을 억지로 끌고 가는 엄마의 선언에 장애인들은 부모라도 격리되어 살 수 밖에 없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아이는 집으로 가면서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집은 어디인가? 장애인들의 집은 어디인가? 왜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청각장애인들은 일반인들과 섞여 살아도 격리되어 사는 존재들이다. 일반인들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외로운 사람들이다. 영화 속 할머니가 손자의 무례함에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말없이 사랑을 준다는 너무나도 통속적인 그림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으로서 사랑을 말하고 전달하고 싶어도 전달할 수 없는 답답한 고통을 함께 그렸더라면 훨씬 차원 높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홍덕
목사·조이장애선교센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