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을 사용하는 나의 친구가 벌써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나 어릴 적 기억엔 40대 아저씨의 모습은 배도 약간 나오고 머리엔 흰 서리 한 두개씩 섞여있고 얼굴은 약간 부은 것마냥 늘어져 있고 세월의 무게가 여기저기 군더더기로 붙여 있었던 것 같다.
그 해 마지막 주말엔 눈이 많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고 새 발자국 하나도 없는 그렇게 맑고 투명한 주말오후였다. 까만 더블재킷을 단정하게 여미고 큼직한 뿔테안경너머로 청명한 눈빛을 뿜어내는 친구의 모습이 그곳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눈밭위로 내리쏟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걸어 돌아 나오는 길, 친구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진지하고 순수한 삶의 방식에 함께 하고 싶다고 느꼈다.
이해타산에 감춰진 냉정함보다 털털하고 따스한 인정이 좋았다.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어설픈 논리보다 조용하고 담백하게 펼치는 솔직함에 마음이 놓였다. 그늘서 자란 관상목보다 어떤 환경에 놓여도 여지없이 헤쳐 나갈 것 같은 야생목의 우직함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신이 주신 내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면서 살고 싶은 내 마음과 꼭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발자취에는 친구의 얇은 밑그림이 조심스럽게 스케치되어 있다. 중년의 문턱에 서서 색감을 넣어야 할 친구의 그림에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물은 약간 중후한 농도로 배합해야 할 것 같고 넉넉하고 고급스런 인품의 색깔도 칠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세상의 오류와 부조리와 모순의 혼란도 과감히 걸러 낼 수 있는 깔때기도 필요할 것 같다.
나의 친구를 위하여 나의 신께 조용히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그이의 맑고 정직한 영혼을 새롭게 하여주시고 모세의 지팡이에 함께 해주신 하늘의 힘을 내 친구에게도 부여해 달라고 말이다. 세상의 어떤 야유에도 굴하지 않고 조용히 절대자 앞에서만 무릎 꿇는 용기를 소유하게 해달라고.
최진희/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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