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한 1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한국에 있는 꿈을 꿨다. 특히 엄마를 만났다. 흔히들 하는 대로 나도 영주권을 신청하느라 신분을 변경했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은 한국에 나갈 수 없었고 그래서 더 한국 꿈을 꿨던 것 같다.
결혼한 첫 해를 넘기기 전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따라 나만 늦잠을 자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우리 집에 있는 꿈을 꾸었다. 엄마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셀폰을 들고 급하게 방으로 들어와 내 귀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여보, 전화 받아. 장모님이셔.”
“엄마- 안 그래도 지금 막 엄마 꿈 꿨는데 엄마 잘 있어?”
“그래, 혜선아... 있지, 엄마 지금 LA 공항에 있다.”
얼마 전에 엄마는 칠레에 계신 분과 새로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사업이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고 엄마는 투자한 돈을 받아오기 위해 갑자기 칠레에 다녀오시게 되었는데 그곳에 계실 때는 바빠서 나한테 알리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엄마가 탄 비행기가 LA를 두 시간 동안 경유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두 시간 동안 LA 공항에 있는데 너한테 전화해서 혹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했지. 그런데 너희 전화번호는 있는데 전화가 계속 안되더라. 전화기에서 뭐라고 영어로 나오기는 하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해도 해도 안 되서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지나가는 미국 아저씨를 붙들고 손짓 발짓으로 물어 봤더니 가르쳐 주잖아. 진작 물어볼 걸...”
엄마는 지역 번호 앞에 1을 누르는 것을 모르셨던 것이다.
“엄마, 나 지금 공항으로 갈께.”
“혜선아, 너 우니? 울지 마라. 그리고 오지 마. 엄마가 전화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인제는 시간이 없어.”
그래도 남편과 나는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가는 길 내내 나는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엄마와 얘기하는 동안 흐르던 눈물은 소리 높여 우는 소리로 바뀌었다. 내가 하도 우니까 엄마는 혹시 그동안 결혼 생활이 힘들고 서러워서 우는 것인가 의심까지 하셨다.
엄마가 탈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방송이 들렸다. 우리가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두 번째 방송이 나왔고, 엄마는 전화를 끊으셔야 했다.
“혜선아, 엄마 지금 가야 되겠다. 서울에 도착하면 전화할께. 미안하다. 울지 말고, 잘 있어.”
나는 조금 전까지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매일같이 꾸던 꿈. 꿈에서 깨어나면 늘 엄마는 없었다.
이혜선/ 노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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