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도 20년이 넘어간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처음 유학으로 이곳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가시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과 문제에 직면하고 부딪히면서 살아오는 동안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 금전적인 피해라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더욱 충격을 받았다.
지금부터 약 8년 전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K변호사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첫인상이 좋아 보여서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식구들끼리 휴일을 이용해서 먼 거리로 여행도 하면서 근 5년이 넘도록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업상 부득이 소송에 휘말리게 되어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게 되었다. 사무실은 윌셔 가 빌딩 15층에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평소에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리지만 사람이 진실하고 예의도 바르고 해서 존경해 오던 차에 소송 건을 부탁했다. 당연히 잘하리라 생각하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몇 달 후 느닷없이 모든 서류가 우리 사무실로 배달이 되기 시작했고 법원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나오라는 통지가 왔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K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 소송 건은 바빠서 더 이상 맡을 수가 없어서 주소를 변경했으며 이 소송은 질 수밖에 없으니 상대편과 협상을 해서 법정 밖 합의로 끝내자고 했다.
그리고 서류상자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이 일을 했는데 더 시간을 끌면 변호사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게 되니 이 선에서 끝낼 것을 종용했다. 평소에 그를 인간적으로 믿고 신뢰해 오던 터라 억울한 심정을 안고 상대방 쪽에서 요구하는 금액을 주고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 한 2년 후 우연히 그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는 변호사가 아니며 변호사 면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전에 받아두었던 서류를 하나씩 꺼내서 확인해본 결과 전부 상대 변호사한테서 온 것이고 그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한 마음에 몇 번 항의도 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15년 넘게 변호사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 이런 일이 어떻게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두둑한 배짱은 감탄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 사건 이후 달갑지 않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 믿어야 할 상황에서조차 믿지 못하고 실수를 해서 두고두고 가슴에 후회를 담고 사는 것이다.
가짜 변호사가 나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상처를 줄까봐 걱정된다.
찰스 김/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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