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들려 주셨다. 김삿갓은 시인으로서 천재였다. 시를 잘 썼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시를 읽지 않았다. 천민이 쓴 시어서였다. 그는 소실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몰랐다. 어렸을 때니까.
김삿갓은 일생 문전걸식을 하면서 3천리를 돌아다녔다. 냇가에 앉아 가랑잎에 시를 써서 냇물에 흘려 보냈다. 냇물에 피라미들이나 그 시를 읽어보라고.
양반들, 지배층 인사들, 돈 많은 부자들은 애정을 소실에게 쏟았다. 그런데 그 소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몹시 천대했다.
그리고 미워했다. 사회에 발을 못 붙이게 제도를 만들었다. 이율배반이다. 국민들도 따라 첩의 자식이라고 같이 손가락질을 했다.
일본인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첩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애인이라고 부르자”고 한 적이 있다.
일본의 유명 신학자 가가와 도요히꼬 선생은 첩의 아들이었다. 기생이면서 어느 부잣집 소실로 들어간 그의 어머니는 가가와를 낳고 아들이 세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삼촌댁에서 자라다 12세 때 어느 선교사 댁 하우스보이로 들어갔다. 그는 그때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유명한 신학자가 되었고 사회사업가가 됐다. 그는 빈민굴에서 빈민과 같이 생활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전 일본 국민의 추앙을 받았다.
그 당시 그가 쓴 ‘한 알의 밀알’이란 소설은 전 국민이 다 읽었다. 희생과 봉사, 정의의 불길을 전 국민 마음속에 심어줬다. 세계인들이 다 추앙하는 인물이 됐다. 한국에 태어났다고 하면 김삿갓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은 많이 변했고 개화가 됐는데도 얼마 전 어느 인사의 어머니 족보를 들춰내는 꼴을 보고 김삿갓 생각이 문득 났다. 대통령 후보자 장인의 색깔을 들고 나오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전무후무 노벨 평화상 받은 것을 ‘개가 웃는다’고까지 비하시켰다. ‘돈주고 샀으니 반납하라’고까지 외쳤다.
언제나 한국에서 ‘첩의 자식’이라고 천대하는 시대가 지나갈지 궁금하다.
김충국/ L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