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이 녹는다. 땅 속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고 초목에서 싹이 트려 한다. 봄이 열리는 소리도 귓가를 아른거린다.
지난 2월 4일은 입춘(立春)이었다.
봄의 계절이 열리는 첫날. 봄을 상징하는 날, 봄빛이 서는 날이 바로 입춘이다.뉴욕도 이제 춥던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기온을 타고 봄이 오는 소리를 기대해봄직 하다. 이제 계절은 동장군도 어찌할 수 없는 겨울의 끝자락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직 봄기운은 미미하다. 봄의 교향곡도 기억 속에만 울려 퍼지는 듯 하지만 그래도 새봄의 문턱이 내다보인다. 지난 1월의 강추위와 폭설은 이제 먼길을 떠나려 할 것이다.
이번 주말에 한파가 온다지만, 아마도 그것은 ‘입춘한파’니, ‘입춘추위 김장독 깬다’는 말처럼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봄을 시샘하는 매서운 추위 정도일 게다.
봄을 상징하는 입춘 날에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 민간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입춘 날 복(福)을 기원하는 풍속 가운데 입춘서(立春書)가 있다.
입춘 때 집이나 점포마다 기둥, 문설주 등에 봄을 맞아 크게 길하다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새해에 경사스런 일이 많다는 의미의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을 써 붙이는 것이다. 천장, 마루들보 같은 데에는 그 해 이름을 쓴 다음, 만사가 뜻대로 크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뜻인 ‘만사여의대통(萬事如意大通)’이라고 써 붙였다.
또 양쪽 대문에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등의 글귀를 써서 붙이기도 했다. 그 뜻은 ‘대문을 활짝 열면 만복이 들어오고,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온다’는 것으로, 새봄을 반갑게 큰 희망을 갖고 맞으며, 부지런히 일하기에 힘써 부자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입춘대길’ 등을 써서 붙이는 입춘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복은 비는 풍습도 있었다.입춘 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해야 연중 액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풍속이다. 이를테면 밤에 몰래 냇가에 가서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있는 한의원 문전에 약탕을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등의 선행이다.
우리 조상들은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공덕을 심판 받는다해서 입춘 때 꼭 지켜야하는 풍속으로 여긴 듯하다. 상여 나갈 때 상여머리에서 부르는 향도가에 ‘입춘 날 절기 좋은 철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 하였는가 / 부처님
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 하였는가’ 하는 대목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복(福)을 받길 원한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는 복을 소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한인가정에서 ‘입춘대길’ 등을 써 붙인 입춘서를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이곳저곳에 새겨진 ‘복(福)’자는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식탁에 놓인 밥그릇 안팎에 새겨진 ‘복’자가 떠오른다.
백일이나 갓돌이 지난 아이들이 사용하는 은수저에서도 ‘복’자를 만날 수 있다.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치맛자락, 옷고름과 소매 끝에서도 ‘복’
자를 쉬이 발견할 수 있다. 덮고 자는 이불에도, 베고 자는 베개에도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찌 보면 온통 ‘복’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정월 초하루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복을 빌고, 정월 대보름이면 달을 향해 복을 기원하고 있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복을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소망이라 할 수 있다.
2월4일 입춘은 지났다. 하지만, 봄이 열리는 계절을 맞아 복을 기원하는 모든 한인들이 남을 돕는 착한 일로 덕을 쌓아 연중 액을 면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적선공덕’의 입춘 미풍 양속을 되새겨 볼일이다.
연창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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