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을 방문하면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지만 택시도 많이 탄다. 택시를 타면 미국 동포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려 애쓴다. 특별한 이유 보다는 그저 별나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90년 초 한국은 물론 그간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어느 날 부자가 되어있었다. 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미국행 비행기는 수많은 한국 여행자들을 LA공항에 토해내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점 미국은 한참 경제위기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었고 LA의 동포사회는 폭동의 상처까지 합쳐 이민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을 감내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 여행자들이 본 미국 동포는 불쌍한 이민자였으며 미국 거지였다.
70~80년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떠나던 그 때의 위상은 이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무렵 나는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택시 운전자는 예의 그 예리한 눈으로 내가 미국 동포라는 것을 파악했다. “고생 많으시죠?” 당시 한국의 젊은 여자들간에 “LA로 시집가라!”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물론 덕담이 아니라 가서 고생하라는 악담이었다.
97년 말 소위 IMF라고 불리는 경제 위기로 한국이 국난을 맞이했을 때도 나는 서울을 방문했다. 택시 운전자가 내게 묻는 말은 격세지감을 갖게 했다. “미국 어때요?” 반드시 한국 사람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돈의 크기와 인격의 크기를 같이 보려한다.
돈만 있으면 큰 소리를 치고 돈이 없으면 주눅이 드는 현상은 한국 사람에게 두드러진다. 대체로 돈 좀 있는 한국 사람들은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동남아의 골프장에서의 한국인의 무례함, 한국인의 이런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또 다시 겸손해진다.
최근 한국에는 반미운동이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른 반미감정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북한 집단의 원격조정과 김대중 정부의 친 북한 정책이 물론 우선적 배경이라지만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한국이 좀 잘살게 되면서 좋게 표현하여 자신감의 회복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없다에서 이제는 미국도 없다의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맹목적 친미도 문제이겠지만 작금의 한국의 반미는 나라의 운명을 그르칠 수 있는 심각성을 안고 있다. 만약 한국이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질 때 한국민이 친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미국 어때요? 고 물으면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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