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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김대중 정부의 2억 달러 대북한 송금을 둘러싸고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현정부가 북한에 거액의 뇌물을 주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산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번 대선에서 실패한 보수세력이 이 이슈를 계기로 물러가는 김대중 정부와 다가올 노무현 정부와의 틈새를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미국 보수 언론들은 한국 진보세력의 민족주의 성향에 쐐기를 박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강경한 대북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건의 진위에 대한 논쟁에서 한발 물러나 대북 지원이 왜 필요한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지금 아주 어려운 상태에 있다. 수만명이 하루 세끼를 해결하지 못하고, 많은 주민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걸고 외국 대사관의 담을 넘고 있다. 독일에선 통일 직전인 1980년대말 헝가리가 서독으로 가려는 동독주민의 행렬에 길을 내주었지만, 지금 중국은 북한 주민의 유일한 한국행 육로를 방해하고 있다.
독일과 비교할 때 한국의 통일비용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동독의 인구는 서독의 3분의1인데 비해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절반에 이른다. 통일 당시 동독의 1인당 소득이 서독의 3분의1이었지만, 지금 남북한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700 달러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소득으로는 굶주림에 빠질리 없고, 적어도 10배 정도는 뻥튀기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소득의 100분의 1의 수준인 것이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될 경우 한국이 치러야할 통일 비용은 연구기관에 따라 수십조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독일의 한 장관은 "앞으로 5년 내에 동독과 서독 주민이 동등한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서독 사이에 경제력의 차이는 해소되지 않고, 독일 경제는 아직도 통일 비용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은 1972년 양독 기본조약 체결후 통일될때까지 17년 동안 한국돈으로 62조원을 동독에 지원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금 북한이 붕괴돼 한국이 북한 경제의 파산을 떠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조금씩, 천천히 북한을 지원하면서 시장경제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북한의 저임금을 활용해서 중국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
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하고, 이 것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며, 노무현 차기정부의 포용정책이다.
둘째, 군사력으로 북한을 개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주한 미군으로 인해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지금 북한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양쪽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막아야겠기에 전쟁보다는 경제교류, 즉 가난한 북한에 대한 지원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지난 5일자 사설에서 대북 송금 사실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북 자금을 공개적으로 주었든지, 비밀리에 주었든지, 그로 인해 남북한 이산 가족이 많이 만나고, 금강산 육로관광길이 열려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을 고립시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도널드 럼스펠
드 미 국방장관에게 노벨 평화상 자격이 있다는 얘긴가.
한국의 어느 일간지는 대북 송금 사건으로 정부-기업-금융기관의 투명성이 상실돼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평가를 주도하는 무디스와 S&P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북한 붕괴시 한국의 재정 부담을 걱정하며 천천히 북한을 도울 것을 권한다. 국내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하지, 대
외신인도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신뢰성을 잃을 뿐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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