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국에서는 달이 훤한 보름날 밤 젊은 남녀가 모여 돌다리를 오가며 남몰래 마음에 드는 짝을 찾는 행사가 있었다. 지신밟기라 하여 씨 뿌려놓은 보리밭을 밟아주며 짝이 나타나 주기를 은근히 바라던, 바로 사랑의 끈을 찾는 축제의 날이었다.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는 끈이 있고, 일생동안 인간은 그 끈을 찾기 위해 저마다 노력한다. 그 중에는 좋은 끈도 있고 그렇지 못한 끈도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14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발렌타인 데이이다. 이 때 유난히 생각나는 사람이거나 가까이 있는 포근한 사람은 분명히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사랑의 끈으로 연결돼 있는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7년 동안 부모가 내리쏟는 사랑의 끈을 꼭 잡고 자란다. 그리고 15년 정도를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의 끈을 잡고 성장한다. 그리고는 저마다 배우자를 만나 사랑의 끈을 엮어 살게 된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부부간의 끈은 대다수가 더 단단하고 좋은 동아줄로 변한다. 이웃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이 있고 서로가 자주 만나면 만
날 수록 그 정의 끈은 더욱 단단하게 동여매진다. 좋은 끈은 바로 사랑이요, 정(情)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은 색깔이나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다. 그래서 발렌타이 데이가 되면 꽃 중에 꽃인 장미가 보란 듯이 판을 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 신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발견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결코 죽지 않는 먼 곳의 영원인 것처럼 사랑도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멀고도 높고 깊은 곳의
영원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랑의 싹이 트이면 관리를 잘 해야 제대로 자라고 빛깔에도 윤이 난다.
사랑은 결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끈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빛깔도 바래진다. 다시 말해 사랑의 끈은 노력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색깔이나 그 화려함도 유지되기 어렵다. 끈을 영속적으로 이어갈 때 사랑은 존속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자식이나 부모,
좋아하는 사람간의 사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사랑에도 측량하기 어려운 고귀함이 얼마든지 있다. 여기 어느 한 사람의 사랑으로 뭉쳐진 미담 하나를 소개한다.
존 F 케네디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수소문 끝에 그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를 백악관에 불러들여 아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하면서 대접을 융숭히 했다는 것이다. 그가 떠나는 날, 케네디 대통령이 그에게 "무슨 좋은 자리를 줄까?"하고 묻자 그가 답하기를 "나는 조그만 마을의 보
잘 것 없는 한 청소부다.
그러나 그 동네에 내가 없으면 쓰레기를 치워갈 사람이 없다. 매일 아침 내가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다 치워주어야만 그 마을이 깨끗해진다. 그럼으로 해서 그 동네의 집들도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면서 케네디의 권유를 뿌리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말인가. 이 동네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쓰레기 백 위에 감사의 표시로 크리스마스 카드와 꽃 한 송이를 올려놓는다고 한다. 이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이런 사랑의 끈이 끊어지면 세상은 삭막해지고 만다. 인간에게는 자기 손으로 치유할 수 없는 고뇌와 상처, 아픔이 있다.
그 것을 바로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치워준다. 이 청소부는 쓰레기를 치워 번 돈을 남몰래 인도에 보내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 교회가 준공하는 날 인도에서 그를 초청, 그는 평생 처음 양복을 입고 교회의 창립자로 박수를 받으며 갔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죄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진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사랑에 의해 치유를 받도록 하기 위해 교회를 세운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살면서 받는 고통과 아픔, 상처, 눈물을 치워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받은 마음을 돌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발렌타이 데이 때 주고받는 장미꽃이 유독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의 슬픔과 아픔, 고통을 치워준다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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