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편집국 정면 벽에는 「正論直筆」(정론직필) 이라고 쓰인 액자가 높이 걸려있다.
고풍스런 액자에다 명조체 한문으로 쓰여진 이 글은 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하는 첨단시대의 편집국 내부와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고개를 들어 응시할 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옷매무새를 다듬게 하는 생활의 좌표구실을 한다.
‘정론직필‘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옳고 그름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바른 언론이라는 뜻으로 기자들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다. 본보 장기영 사주의 어록에 나오는 ‘정론직필‘을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이 본보 창간 20주년으로 써 선물한 것으로 14년째 편집국을 지켜오고 있다.
오늘 이 글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세월이 갈수록 ‘정론직필‘의 어려움이 느껴지고 두려움마저 들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보도는 반드시 칭찬과 비판을 동반하게 되고 비판은 언론이나 당사자 모두에게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서면 서로 만나게되는 작은 이민 커뮤니티에서 다수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판을 해야하는 언론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언론의 비판은 다수와 그 집단의 미래의 발전을 위한 분명한 명분, 정확한 정보와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비판기사는 찬양기사보다 많은 데스크를 거치고 그만큼 고심하게 된다.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사람의 무고한 희생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에도 로즈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 한인회 등이 각각 무원칙과 잡음으로 언론의 비판대상이 됐다. 많은 부분의 공(功)도 있었지만 지나칠 수 없는 한 부분의 과(過)가 한인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언론비판의 결과는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수용하는 자세에 따라 좋은 약이 될 수도 있고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한때 언론의 많은 비판을 받았던 김대중 전대통령도 “나는 신문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당하기도 해 때로는 속으로 화도 나고 어떻게 해 볼 까도 생각했으나 언론이 있는 덕택으로 오늘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언론과 만나 ‘비판 없는 찬양보다 우정 있는 비판’을 부탁했다. 오랜 세월 언론의 비판을 참고 수용하고 접목시킨 한 정치인의 언론철학이다.
토머스 제퍼슨도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인가,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는 신문의 책임과 여론을 존중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인회장 당선무효 판결이후의 잡음을 지적했던 지난 에세이 ‘한인회 코미디’가 나간 후 수많은 격려전화를 받았다. ‘정론직필‘의 책임감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정론직필‘의 책임을 다할 때 그 기사는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간다. 독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곡된 기사는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감동을 할 때 그 사회는 부패하지 않고 신선하게 된다.
사건기사도 마찬가지다. 잠을 설치며 범인을 쫓고, 같이 울고 연민의 고통이 밴 기사가 감동을 준다. 졸병 기자시절 경찰에 체포된 살인사건 범인에 대해 온갖 나쁜 수식어를 동원해 작성한 기사를 본 한 선배기자의 말이 생생하다. “신문은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경찰 편이지만 범인이 잡히고 나면 범인의 편이야.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해서는 안돼”
지난 35년 한인타운의 역사는 비판과 찬양, 감동으로 함께 해온 한인사회와 본보의 애증의 역사이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사와 개선이 있었고 저항과 도전도 있었다.
오늘 데스크에 올라온 또 하나의 비판 기사를 앞에 놓고 고통 속에 ‘정론직필‘의 좌우명을 수없이 되새겨보며 보다 성숙된 한인사회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권기준<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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