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2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통분모가 있었다. “부모님을 보면 미국에서 사는지, 한국에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한국음식을 먹을 때만 ‘코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다. 2세들의 생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 사는 1세들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들은 대개 아침에 집을 나와 하루종일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 되야 집에 돌아간다. 그리고는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뒤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을 1세들은 일주 내내 반복하다 주말이면 집에서 하루종일 쉬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
를 치곤 한다. 또 어쩌다 시간이 나면 한인들이 모이는 행사에 얼굴을 들이민다. 물론 거기서도 어김없이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 한인들은 이런 생활을 ‘안정’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보자. 과연 우리의 생활이 이처럼 안정이라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건지. 우리는 과연 어디에 살고 있는가. 미국에 산다고들 말들 하는데 과연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얼마만큼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인가. 미국은 지금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고국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과연 우리는 이 위기에 있는 미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했는지.
아침, 저녁으로 흘러나오는 긴박한 전쟁상황 보도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은 있는지. 위기 시 우리가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울컥했던 것처럼 미국의 성조기를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는 지. 또 매일같이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 사회 돌아가는 일에 대해 과연 얼마 만큼 알려고 노력했는지. 한인기독교계 인구는 전체의 6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중 몇 명의 부모가 자녀들을 데리고 한번 미국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보는지 탐방해본 일이 있는지.
미국에 흔해빠진 세계의 음식들이 있는데 이런 것도 한번 먹어보고 하는 노력을 해본 일이 있는지. 지역마다 벌어지는 스트릿 페어 같은 행사에도 간혹 나가 이들이 파는 음식을 먹으면서 물건도 사주고 하는 그런 참여자세를 보인 적은 있는지.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 뉴욕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문화에 대해서도 한번 직접 찾아가 본 일은 있는지. 이런 것들은 모두 헛된 체험이 아니다. 미국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이다. 여기는 미국이고 지금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번 스스로 깨달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시민은 어느 형태로든지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요, 원동력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한인 시민권자들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참여의식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앞장서자는 것이 아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분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자세가 미국에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미국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앞에 열거한 작은 노력들은 설령 커뮤니티 참여는 없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인 참여가 되는 일이 아닌가. 내가 사는 곳에 참여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과연 이런 것들에 대해 얼마만큼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동포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현지에 적응해서 훌륭한 시민이 돼라”고. 말하자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의 말을 특별히 당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포들은 오히려 더 한국적이고 더욱 미국사회와는 유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우리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것
이 아니다. 2세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 자신을 두고 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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