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갑자기 냉각되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겠다고 덤벼들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방향이 어디로 갈 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을 불안감에 떨게 하고, 소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기업들도 투자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뉴욕 월가로 대표되는 국제금융시장에서도 한국 경제의 균형이 깨졌다. 첫째,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하면서 이머징 마켓의 정부채권 가격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국 국채는 거꾸로 하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국채의 가산금리는 올 들어 7% 포인트 급락, 월가의 투자자들이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브라질을 지지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채(외평채)의 가산금리는 지난 대선 직후 1.1%에서 요즘 2% 가깝게 폭등했다. 이는 해외투자자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월가에서는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을 보지 않고, 이른바 지정학적 리스크를 투자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머징 마켓 투자자들이 한국 등 정세가 불안한 나라에서 빠져 나와 브라질 등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투자할 곳으로 옮기고 있다.
둘째로 원화 환율이 급등, 한국 돈 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어서고, 전쟁 불안감으로 달러 값이 하락하는데도, 원화는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외환시장의 딜러들은 얼마 전까지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 사이의 비율을 1대10의 공식으로 거래를 해왔다. 즉 엔화를 1달러 당 120엔에 거래하면 한국 원화를 1달러 당 1,200원에 불러 가격을 형성했다. 그런데 이 환율 등식이 이달 들어 갑자기 붕괴했다.
엔화가 1달러 당 117엔대로 강세로 돌아섰는데, 한국 원화는 1,250원으로 하락했다. 한국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 코스트가 높아지면서 달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 압력이 원화 환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외환 딜러들이 한국 경제를 보는 심리적 불안감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한국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는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 사람들은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고, 미국 경제가 수렁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인들이 한반도 사태를 사실보다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한국 경제가 갑자기 악화된 것은 한국 정부의 잘못이 크다.
지난 대선 이후 노무현 정부 출범까지 2개월간 사실상 정부의 공백 상태가 있었다. 북한 핵 이슈가 불거져 국내외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데도 물러간 정부나 새로 권력을 잡을 수뇌부들은 잘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태평스럽게 보냈다. 그런 사이에 한반도 사태는 악화됐고, 뉴욕 월가의 기류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월가의 한국물 데스크들은 한국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대신에 정세분석가들이 내놓은 자료들을 토대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판단한다. 최근 월가에는 미국의 북한 영변 공격 가능성, 북한의 농축 우라늄 개발설, 북한의 사담 후세인 망명 주선설 등이 떠돌고 있다. 한국 정부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디스가 잘 나가는 경제를 다운 그레이드했다고 불평하는 게 고작이었다.
경제의 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금융시장의 단기 쇼크에 의해 펀더멘털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형성된 글로벌 시스템의 법칙이다. 전쟁 가능성이 1%만 돼도 금융시장에서 판단하는 리스크는 엄청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경기부양책도 내놓고, 금리를 낮추고, 월가 사람들을 만나 사실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97년 말 외환 위기와는 다르지만, 잘못될 경우 위기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설마’하는 자만심이 바로 위기의 원인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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