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불안하다. 한없이 불안하다. 요즘 미국과 이라크와의 전쟁을 보면 ‘유토피아(utopia)’란 말이 새삼 그립다. 인간의 갈등이 심화될 때 사람은 어떤 이상세계를 꿈꾸게 된다.
지금 유토피아를 생각하게 된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제 정세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TV를 통해 파괴와 살상의 현장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갈등과 피 흘림이 없는 유토피아를 다시 꿈꾸게 된다.
복잡 미묘한 세계 정세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국제사회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개인의 생활도 가치관의 혼돈으로 방향을 잃고 있다. 사상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배경으로 세계는 지금까지 보면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를 거듭해 왔다. 또 투쟁이나 분쟁의 역사는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지구촌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역사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
‘더불어 현존하는 사회’ 이것이 인류의 희망사항 일진데 언제나 우리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되자면 서로 이념과 원칙이 다른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강한 자와 약한 자, 강대국과 약소국이 다같이 어우러져 살 수 있어야만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상사회, 유토피안 소사이어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200여 나라가 각기 다른 성격이나 체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같이 모여 모자이크를 이루는 것이나 미국의 180여 인종이 서로 어우러져 샐러드 보울을 형성하는 것은 모두 있는 그대로를 서로가 존중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것이 바탕이 돼 건설적인 의견을 창출하고 세계적인 평화와 안전을 희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힘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아니면 승자가 되기 위해 있는 자가 세력을 과시한다면 사회든, 국가든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서로간의 갈등으로 다툼과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맨하탄에 가면 지역별로 각국의 음식을 주제로 한 식당이나 패션, 나라별 문화들이 줄을 지어 있는 것을 본다. 종류와 내용이 다르더라도 사람마다 희망하고 좋아하는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그대로 자기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사람들의 구미를 돋구고 관심을 모은다.
미국이란 나라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흑과 백, 강과 약, 그리고 대와 소가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루면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이 땅이 과연 그들의 기대만큼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우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면서도 그런 사회를 현실 속에서 누리지는 못해 왔다. 혹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거나 창세기 때 에덴동산으로나 돌아가야 가능할까.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 장소(no place)’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천년왕국이란 갈등이나 고통, 죽음이 없고 기쁨과 충만한 생명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에덴동산도 어떠한 고통이나 질병, 다툼이 없던 평화로운 곳으로 묘사돼 있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찾기 힘든 무대다.
우리가 바라는 소박한 이상은 ‘평화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런 나라는 지금까지 어떤 제도 속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비유컨대 연못을 만들어놓고 세상의 모든 고기를 다 집어넣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놓은 상대적인 이념이나 시스템에 모든 사람을 다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짠물에 사는 고기와 단물에 사는 고기가 따로 있듯 인간의 삶도 각기 살아온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 사회는 보다 살기 좋은 작은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충돌의 역사 속에서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쿼바디스(quo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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