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온갖 것이 설렘으로 물드는 봄날이 왔다. 내 생애 봄날은 몇 번이나 찾아왔던가, 단 한번도 설렘 없이 보낸 적은 없지만 이번 봄만큼 생명들의 설렘에 귀 기울이기는 처음이다. 팔로알토 동네 길을 두세 시간씩 걷기로 달아 다니며 집집마다의 정원에 피어 있는 나무와 풀과 꽃들을 감상하는 일은 여간 향기로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에나 자연은 참신하지만 특히 봄날의 참신함은 그 선명하고 맑음이 더욱 강하여 우리로 하여금 설렘의 충동으로 가득 차게 한다. 고목과 뿌리를 의지해서 피어나는 꽃이나 새싹의 움틈에서 참신함의 절정을 보는 것은 뛰어난 안목이다. 묵은 것에서 새 것이 생겨나는 온고지신이 아니겠는가.
묵은 것의 둥치를 치려고 뿌리를 뽑아버리면서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어설프고 거칠어 솔잎을 씹는 듯한 산뜻하지 못한 생경한 느낌이다.
사라토가에 있는 하꼬네 산방도 마을 안에서 봄맞이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일본식으로 꾸며놓은 넓은 산골짝 정원에는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섬세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임제 스님의 수행을 받드는 이곳에서 ‘발 밑을 살펴 보라’는 경책을 써 붙여놓고 다다미 큰방에 들어가 묵언으로 한식경 앉아 있다가 나가도록 안내되고 있다.
임제가 누구인가 사자의 온전한 울부짖음을 감추어 가지고서 뭇 사람의 뇌간을 찢어버리고 나아가 짐승 같은 마음의 거래를 단 칼에 끊어버리는 그런 날강도 같은 수법을 가진 스님이라고 찬탄되고 있는 분이다.
무엇이 짐승 같은 마음의 거래인가. 아수라 같은 인간의 승부심이니 피아를 가려서 지옥 갈 업을 키우는 것이라 답하였다. 우리의 발 밑에는 이 승부심이 지뢰밭이 되어 깔려있으니 조심해서 살펴보고 걸음걸음 할 것이며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그대 임제를 한번 찾아볼 일이다.
차를 타고 마을길을 돌아보다 보면 도처의 뜰에는 전쟁은 안 된다는 팻말이 눈에 뜨인다. 그 팻말 옆에 피어있는 꽃들은 집 멀리 떠난 나그네의 고향 길 잊음을 애석해 하는 듯 하다.
국익을 따져서 싸우는 일없이, 사익을 따져서 욕심내는 일없이 풍년들고 태평한 내 고향을 바랄 뿐이다. 설렘이 없는 봄은 ‘봄 같지 않은 봄’이라 하여 우울함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지금 막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현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피아간 군인이나 민간인들이나 그들 인생의 가장 봄 같지 않은 봄을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이윤우/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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