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자 월스트릿 저널은 노무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삽화를 곁들여 “이라크 전쟁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분노와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내용은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돈독한 외교적 관계를 유지했던 러시아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취임 후 ‘마지못해 미국의 대외 정책을 지지했던’ 노 대통령이 TV 담화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밀어줬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내 반전운동과 ‘국익’ 사이를 고민하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에 대해 미국 보수세력의 견해를 대변하는 언론은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지지를 얻어낸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국과 한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반대라는 공감대를 확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은 현격한 사고의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에선 전통적인 우방국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고민스러운 일이 된데 비해, 미국의 일부 보수층에선 한국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당연히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다음이 어디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내외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다음은 북한 차례라며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는 근거 없고 부정확한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시 대통령도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이라크 다음에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하는 나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서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 문제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 문제와 이라크 사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후세인은 12년 동안이나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란과 쿠웨이트, 요르단, 이스라엘 등 주변 국가를 위협했다. 이에 비해 한반도에선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않고 경제협력을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는 정전 협정 이외에는 어떠한 외교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지만, 미국과 북한, 한국과 북한 사이에는 여러 가지 외교협정이 체결돼 있다. 이 외교적 틀로 서로 복귀할 경우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이라크 사태에서 미국은 유엔 외교 틀 속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에 대비, 다른 한편에선 전쟁을 준비했었다. 파월 장관이 유엔 외교를 하는 동안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 공격을 준비했다.
한미관계가 미묘한 시점에 있다. 한국에선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파병하는 문제에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미국에선 윌리엄 새파이어, 리처드 알렌 등 3~4명의 유명 컬럼니스트들이 “한국인들이 미국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미군을 철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상호 불신을 유발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미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에 앞서 중요한 것은 한미간 벌어진 이해관계와 사고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4월중 체니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5월에 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한미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한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이 체니 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니는 미국 보수세력의 수장 격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는 얼마전 코리아 소사이어티 모임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노 대통령이 체니 부통령을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면 5월 정상회담도 성공할 것이다. 한국이 체니를 설득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정치인들이 초당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고, 북한에 경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2001년에 부시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그게 큰 불행이었다. 그로부터 대통령이 힘을 잃었고, 남북관계도 뒤틀어져 레임덕 현상이 일찍 나타났던 것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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