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대회전을 앞두고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이면 유혈 낭자한 본격 시가전이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CNN은 종일 전쟁뉴스다. 하지만 ESPN으로 채널을 옮기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쟁을 하는 나라의 TV 같지 않다. 때 마침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돼 볼거리는 더 많아졌다. 한인들의 관심도 박찬호(죽을 쑤고 있지만-), 김병현, 최희섭… 이런 이름들에 모아진다.
어제, 그제 이틀 간 세리토스 센터에서는‘안 트리오’가 미국의 현대 무용단과 공연을 했다.‘안씨 문중(門中) 일’쯤으로 여기고 모처럼 짬을 냈더니 지난 번‘난타’공연 때와는 달리 객석이 썰렁했다. “역시 전쟁”이라고 생각했는데 둘째 날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로는 그렇지도 않았다고 한다.
많은 한인들에게 이라크 전은 뉴스 속에나 있다. TV나 신문에 갇힌 이벤트라는 기분이 들 정도다.
저녁이면 타운 업소에 모여드는 젊은이 중에는 “전쟁 첫날은 좀 우울했다. 죄스럽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전쟁뉴스에도 익숙해져서-”지금은 야간생활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전쟁을 제 발등의 불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워낙 큰 나라고, 다양한 사회여서 그런가, 중계의 대상이 야구냐 전쟁이냐가 다를 뿐 둘 다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아들·딸을 전장에 보내고, 가슴 졸이고 있는 가족들께는 죄송한 일이다. 특히 이미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탄에 잠긴 이들에게는 죄송하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500명이 죽었다고 해도 뉴스로 듣고 있을 때는 500명이 숫자이상의 의미가 없다. 실물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면 한 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북핵, 북핵 하지만 북한 사람도 직접 만나 손을 잡고 인사라도 한 번 나눠보라. 전쟁? 천만에! 한 사람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전쟁을 가장 타는 분야는 바로 경제다. “글쎄, 별 관계 없는데요”라는 타운업소도 있지만 주류사회와 연관된 비즈니스들은 특히 전쟁의 실물감을 후방에 앉아서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광고부터 끊는 대기업이 많다. 미 경제를 숫자로 풀어 볼 수 있는 각종 경제지표에는 일제히 전쟁 쇼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우선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괴질 소동까지 겹쳐 항공사와 여행업계가 죽을 쑤고 있다는 것은 구문이지만 은행 창구 앞 줄도 짧아졌다는 전언도 있다.
커뮤니티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다운타운은 특히 주류사회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우려하는 소리들이 많다. 소매가 주니까 재고는 쌓이고 도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 때쯤이면 봄 상품은 다 나가고, 여름준비가 본격화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쟁이 얼른 끝나지 않으면 큰 일이라는 것은 전선에서나 후방에서나 똑같다.
“빠듯한 직장생활에 문화생활 한 번 하는 것도 전투”라며 ‘안 트리오’ 공연장에서 직장동료와 농담을 나눴지만 이라크에 전쟁하러 가는 것과 세리토스에 공연 보러 가는 것과는 엄청난 차가 있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안상호<경제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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