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비가 많이 내린다. 3월 중순인데도 비가 내린다. 어디서들 몰려왔는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마을의 뒷산이며 저 멀리 보이는 발디 마운틴에도 짙은 구름이 끼어 있다. 비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내린다.
한국의 여름 장마와 이곳의 비는 많이 다르다. 장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이 천둥과 번개를 거느리고 기세 등등하게 내린다면, 캘리포니아의 비는 차분하고 고즈넉하게 내린다. 며칠 전에 심은 채송화와 데이지 옆으로 빗물이 조용하게 흘러내린다.
비는 잎사귀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가만가만 그들의 발목을 적시며 땅 속으로 이제 막 제 길을 연 뿌리들 틈 사이로 흘러든다.
비가 그치자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더 깊어진 푸른 창공으로 까만 날개를 넓게 펴고 힘차게 새들이 날아오른다.
나무들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연보랏빛 꽃을 나무 가지마다 가득 매달고 매화가 화사하게 웃기 시작했고, 목련도 푸른 잎 사이로 하나 둘씩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 닷새 쉬지 않고 내릴 것 같던 비가 멈추더니 세상은 더욱 환하게 변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꽃 소식이 전해져 온다.
데스벨리에도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다고 하며, 파피 단지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의 발길로 부산하다고 한다. 빗물처럼 바람처럼 꽃들은 소리도 없이 제 자리를 지켜냈다.
꽃 소식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중동에서 불어오는 전쟁 소식 때문이다. 그곳에 꽃처럼 해맑은 웃음을 웃는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유령의 도시처럼 변한 바그다드의 시내 모습이 황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정녕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도시 한 복판으로 최신예 MIAI 탱크가 진군해 들어오고, 탱크 위로는 AH64D 아파치 헬리콥터가 호위비행을 하며 날아올 것이다. 무엇으로 그들을 대적할 수 있을까.
참으로 봄이 멀게 느껴진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비 온 후 땅이 더욱 굳어진다고 했던가.
바그다드에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폭탄 대신 봄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한 닷새 쉬지 않고 내리면 그곳에도 꽃이 피겠지.
언젠가 꽃이 피어나겠지. 그러면 그곳에도 봄이 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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