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해방 전쟁’이라 부르던‘이라크 침공’이라 부르던 처참한 전쟁은 이제 끝났다. 군당국은 개전 이래 10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음을 알리고 있다.
기십만 군인이 동원된 전쟁에서 그 정도의 전사자가 발생했다면 그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필경 전사 소식쯤 먼 전선에서 오는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로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일 것이다.
단 한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더라도 그가 내 가족 - 내 자식, 내 남편, 내 형제요 혈육이라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래서 전쟁은 그 명분과 양상, 그 규모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몹쓸 짓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바그다드 함락후 ‘이라크 국민에게 좋은 날’이라고 일갈했다. 이라크 국민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맛보는 상서로운 날이라는 뜻일 게다.
나는 당당했던 후세인의 동상이 맥없이 떨어져 뒹구는 광경을 목격하며 권력의 허상, 그 무상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자조 섞인 표정으로 읊조리던 우리 선조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전 캄보디아 국왕이요 후에 최고민족이사회 의장이 된 시하누크는 그의 자서전에서 권력의 무상을 이렇게 피력한다.
“내가 권좌에 있을 때 동상을 세우겠다며 법석을 떨던 사람들이 내가 권좌에서 밀려나니까 제일 먼저 달려와 내 동상을 헐겠다며 설쳐댔다”
필리핀의 초년 정치인 마르코스는 꽤 정의감도 있고 애국이 무엇인지도 아는 괜찮은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권력의 단맛을 보고 인의 장막에 휩싸이더니 점점 타락의 늪으로 깊숙이 침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치달아 결국은 외지로 쫓겨나 욕된 최후를 맞는다.
멀리 두리번거릴 것까지도 없다. 우리 최근세 역사를 봐도 그 선례는 허다하고 그 족적은 선명하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라. 독립운동가요 애국자였던 초대대통령의 비참한 말로를 똑똑히 지켜본 후임자들의 답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1975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죽기 몇해 전 ‘정적들을 용서할 용기가 있는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그는 “나는 정적이 없다, 모두 죽였으니까”라며 태연히 소름 돋는 명언을 남긴다. 정치판의 생리, 인간 욕망의 한계를 극명하게 까벗기는 20세기 독재사의 한 단면이 아닌가.
사담 후세인은 갔지만, 독재자와 그들의 마수는 아직도 지구촌 구석구석에 건재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평화도 정의도 요원하기만 한 것인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배시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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