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흔적은 연한 분홍색 한복 치마로 연상된다.
내가 대여섯 살 시절 대부분의 가정 주부들은 집에서도 한복을 입었다. 요즘처럼 길이가 짧은 개량한복이 아닌 긴 치맛자락 앞에 새하얀 무명으로 된 행주치마를 입고 집안 일을 했다. 엄마가 외출할 때면 늘 입고있던 그 한복치마를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밖에서 놀다가, 아니면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서면서 “엄마”부터 찾았지만 안방에도, 부엌에도 엄마 모습이 없을 때의 그 쓸쓸함, 마치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는 안방 벽 못에 걸린 엄마가 벗어놓고 나간 분홍색 한복 치마가 최고 명약이었다.
은은한 분 냄새와 반찬 냄새가 살짝 밴 폭넓은 치맛자락을 온 몸에 휘감고 서있으면 엄마의 품속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연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는 늦은 오후, 혼자 있는 적막감을 치맛자락에서 맡는 엄마의 냄새가 달래주었다.
나는 한복 입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추석이나 명절 때면 개량 한복을 입고 출근하기도 한다. 한복을 입으면 마치 내 피부처럼 착용감이 편하고 마음이 안정된다.
수년 전에는 한국을 방문, 공항에서 목동 언니 집에 막 도착하여 신문을 보니 강남의 한 절에서 우리옷 잔치가 열린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강남으로 달려가 마음에 드는 한복을 사며 가슴 뿌듯했던 적도 있었다.한복은 작은 키와 몸매에 상관없이 한인이라면 누구나 잘 어울릴 뿐 아니라 부드러운 옷선에 새하얀 동정이 달린 저고리의 앞섶을 여밀 때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져서 좋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한복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의 넓이, 치마폭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5,000년 이상 우리 조상들이 입어 왔다. 우리 옷 연구가 석주선 박사의 저서 <한국전통 어린이복식>을 보면 ‘백일까지는 흰색의 옷을 입힌다는 민가의 풍습과는 달리 태어난 지 1주년이 되는 첫 생일인 돌이 되면 남녀를 구별하여 화려한 색깔의 한복을 만들어 입혔다. 남아는 복건, 까치 두루마기, 색동 마고자,
풍차바지, 타래버선, 돌띠 주머니, 태사혜 등을, 여아는 조바위나 댕기, 색동 두루마기, 색동 저고리, 꽃분홍이나 다홍치마, 속바지, 속치마, 타래버선, 운혜, 주머니 등 머리쓰개부터 다양한 옷과 신발까지 갖춘 어른스러운 복장으로 성장하였다.
어린이의 상징인 색동은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어린이의 꿈과도 연결될 뿐 아니라 신부 원삼이나 활옷 등 경사스런 의식에도 사용되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애용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석주선 박사로부터 전통색의 조화와 원리를 깨우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뉴욕에서 두 차례의 한복 쇼를 갖는다.
오는 16일 오후 8시 퀸즈 아스토리아 월드 매너, 18일 오후 7시 맨하탄 메리옷 마퀴스 호텔에서 본보 특별후원으로 열리는 이영희 한국의상 패션쇼에는 우리의 멋과 격조, 여유가 담긴 다양한 한복들이 선보인다.궁중의상, 사대부 의상, 기녀복, 현대한복 등이 한인들에게는 아름다운 우리 옷에 대한 자부심을, 외국인들 가슴에는 한복(Han-Bok)이란 이름을 또렷하게 새겨 넣어 줄 것이다.
이날, 우리는 한복의 선과 색을 유의 깊게 살펴보자. 석양 무렵 단청 빛깔, 흐린 날 기와지붕 빛깔, 충분한 햇볕과 바람으로 성장한 과실의 빛, 마음을 한없이 넓게 해주는 황토빛 등 신비하고도 은은한 색상이 그동안 잊어버렸던 고국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몸은 고향을 떠났지만 이국에서의 삶도 잘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위무하며 조용하고 깊이 있는 사색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공장에서 염색된 화학 염료가 아니라 자연에서 걷어온 이 빛깔을 미국인들에게도 입혀보자. 한복을 응용한 선과 색은 자연 속에서 태동한 것이므로 살아 숨쉬는 누구에게나 어울릴 것이다.
아참, ‘한복’이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 탑 10 중 첫손가락에 꼽혔다는 것, 알고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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