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를 다니다 보면 색다른 풍경과 숱한 군상을 접하게 되지만 즐거운 추억거리도 수려한 풍광도 아니면서 어떤 나라에 관해 회자할 기회가 있으면 각막에 먼저 떠오르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 나라 그 도시의 거리에서 보았던 거지의 모습이다.
인도의 거지‘비카리(bhikhari)’는 숙명적인 세습적 거지이다. 예부터 카스트라는 신분제도가 남긴 수드라(노예)계급의 불가촉 천민(untouchable)으로 자신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거지로 운명지어진 자식들을 부둥켜안고 신호등의 빨간 불이 짧은 듯 차창에 애처롭게 달려든다.
그러나 동전이라도 건네면 “바그완 아프카”(신이 당신에게 축복을 주시길)”라고 축복과 감사를 할 줄 아는 미천한 신분의 고상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베트남의 거지‘워이안신(nguoi an xin)’은 전쟁의 상처자국이 남은 거지이다. 어린애를 연약한 팔에 안은 전쟁 미망인들이 시클로(삼륜 인력 자전거)나 오토바이 사이를 헤치면서 애절한 눈망울로 하루 생존이 적선자에게 달린 듯 애걸을 한다.
일본의 거지 ‘고지끼’는 텐숀(긴장)사회라는 일본 주식회사에서 사회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해 자기 분열증세를 일으킨 자폐증 환자다. 사회생활을 하다 전업한, 배운 거지로 이어폰도 귀에 꽂고 누구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도 등에 마냥 자리 깔고 앉아있다. 물질 문명 사회라는 질곡아래 개인 자유를 만끽(?)하는 자유 의사로 선택한 거지로 은행통장도 있다.
남미의 거지 ‘바고(Vago)’는 거리의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다가와 열쇠 고리 등 잡동사니를 흔들며 어설픈 장사를 하거나 혹은 길모퉁이에서 서커스단원처럼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묘기를 발휘하면서 동냥을 구하는 미성년자 인디오 거지들이다.
유럽의 거지는 낭만적이다. 제법 예쁜 숙녀도 한 패거리가 되어 악기를 켜고 행인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관람료로 한 두 푼 모자에 넣어 주기를 바란다. 지금은 빛을 못 본 거리의 연예인이지만 언젠가는 화려한 가수가 되는 꿈을 꾸는 집시 풍의 거지이다.
미국의 거지는 세계대국의 자존심 문제인지 ‘Beggar’라고 하지 않고 ‘Homeless’라 한다. 고상하게 미화시킨 이름에 반해서 그들은 고도물질문명이 황폐화시킨 정신분열증 비렁뱅이이다. 첨단 문명의 그늘에서 자아를 잃은 듯 휑한 눈에 핏기마저 잃은, 사회나 가정에서 버림을 받았거나 아편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듯 시커먼 수염 속에 핏발선 눈을 가진 몽유병자 같은 거지다.
중국의 거지 ‘야오판(欲飯)’은 밥을 원한다라는 직설적인 구걸의 뜻이다. 한 가구 한 자녀 인구 억제 정책의 부작용으로 주민등록에도 못 실리는 무호구(無戶口) 젊은이들이 잉여 생산되어 무작정 도시로 밀려들면서 날품팔이 홈리스가 된다.
한국의 거지는 미동도 없이 축 널어진 젖먹이를 업고서 육교나 지하도 계단을 가로막고 엎드려 적선자를 쳐다도 보지 않는 붙박이 형이다.
석유부국의 아랍거지 ‘싸-일’은 어떠할까. 낙타나 양의 가축냄새가 밴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으나 하느님이외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당한 거지이다. 그들은 구걸대신 ‘박시시(자선)’라고 한다. 부자가 자선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므로 꿋꿋하게 다가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맡겨 놓은 돈 받으러 온 채권자 같이 군다.
티베트의 거지는 황혼거지다. 이승을 하직하는 노인들이 속세의 모든 소유와 인연을 다 버리고 넝마를 걸치고 황야를 걸어간다. 가다 지쳐 돌부리 위에 눕는다. 거지가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을 새떼들에게 적선을, 보시를 한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거지의 일생에 다름 아님을 몸소 실천한다.
듀크 김/부동산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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