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한국명 연소진·슬로컴스큐스 초등학교6년)는 91년 6월4일생이니까 이제 만12세를 넘긴 소녀다. 뉴저지에서 태어나서 한번도 한국에 가본 적이 없으니 말 그대로 ‘네이티브 본 아메리칸’이다.
하지만 린다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헷갈린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답지 않게 발음에서부터 단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다가도 옆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남동생 앤드류(한국명 연중화)에게 이야기 할 때는 영어를 쓴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린다, 한국말!"하고 주의를 준다.
"한국에서 살다 온 아이처럼 한국말을 참 잘하네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잰 나보다 더 한국적이에요"라고 한다. 김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잘 먹는 린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순두부찌게. 그것도 매운 것만 골라서 시켜 먹는다. 이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가족 외식으로 꼭 순두부 음식점을 찾고 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한국의 5인조 남성그룹 god이고 이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도 한국 애들이고 요즘엔 한글 채팅을 하느라 아빠를 졸라서 한글 자판이 가능한 컴퓨터 키보드도 마련했다.
한국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최근 본 드라마 중에서는 ‘올 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남자 주인공인 이병헌이 잘생겨서 그렇지?"라고 묻자 화들짝 놀라며 절대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별로 싫어하는 내색은 아니다. 아니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드라마 내용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린다의 이중문화 생활에 크게 어필한 때문일까.
린다가 한국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에피소드 한가지. 아빠 이야기로는 "얼마 전에 자기 엄마한테 ‘왜 한국사람은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돼?’라는 질문을 해서 엄마가 당황한 적이 있었어요. ‘너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구나’라고 엄마가 되묻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대꾸도 않더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정성스레 접힌 종이 학이 가득 담긴 통을 집으로 가져와서는 제 방에 놔두더군요"란다.
린다에게 "학이 몇 마리 들어있던?"하고 묻자 별 걸 다 말했다며 아빠를 흘겨보면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런 린다가 요즘 재미를 붙인 취미는 골프다. 미술은 5년을 배웠고 수영은 3년, 태권도는 1년을 해서 빨간 띠이지만 3년째 배운 골프가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거다. 발레를 가르쳐봤지만 싫다고 해서 그만뒀고 피아노도 시키려 했지만 플롯이 재미있다며 건반조차 건드리지 않는다. 아빠는 "쟤는 폼 나는 것만 좋아해요"라고 놀려댄다. 또래의 한국 아이들이 과외의 중압에 시달리면서 서서히 입시라는 짐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일텐데 린다에게는 조금도 그런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명문대를 나와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아버지는 딸에게 특별히 공부를 잘 하라고 주문하지도 않고 다만 ‘자신의 개성을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줄 뿐’이라고 한다.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사립학교를 보내겠다는 엄마를 설득해 공립학교에 보낸 것도 이런 이유다.
이모할머니, 고모할머니가 살고 계신 한국에 꼭 가고 싶다는 린다의 소원은 내년쯤 이뤄질 것 같다. "한국에 가면 놀이공원부터 가고 싶어요. 에버랜드요. 그리고 유치원 때 친구인 은지도 만나고 싶고, 또 …." 한국과 미국이라는 상반된 문화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거나 소속에 대한 강박감에 시달리기 쉬운 1세 또는 1.5세의 이중언어 사용자와는 달리 린다는 이중문화권자라는 새로운 세대로 자라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한국적인 독특한 가정교육과 미국적인 자유분방한 제도교육을 둘 다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자라난 린다가 앞으로 열어갈 한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글/사진 장래준 기자>
jraju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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