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어 서울을 다녀왔다. 고국방문 성수기를 앞둔 서울의 시장취재가 휴가직전에 맞물려 있던 터라 도착하자마자 하루 10만 명이 드나든다는 동대문시장 두산타워부터 찾았다. 10여 층 건물 층층이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부터 각종 의류, 잡화, 혼수용품 등 물건들이 빼곡해 밤낮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댄다고 자랑하던 친구의 얘기를 떠올리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들어섰건만 복도마다 휑한 것이 한산해도 너무 한산해 잘못 찾아왔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건들은 소문대로 다양하고 시선을 끄는 것도 많았지만 정작 사진을 찍으려니 도저히 시장의 북적거리는 맛이 살지 않아서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국 각지의 소매상인들이 몰려 난장판이 따로 없다는 이른 새벽장을 다시 한번 들렀다. 주간보다는 활기가 있었지만 많은 점포들이 파리 날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계소비가 위축돼 판매가 갈수록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는 도소매 상인들의 한숨 섞인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한창 바쁘게 돌아갈 낮 시간에도 길가에 죽 늘어선 빈 택시행렬이 그늘진 경기를 짐작케 했다. 좀 더 경기를 알아볼 심산으로 일반택시를 잡아탔더니 먼저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이 행선지를 말하기가 무섭게 기사아저씨의 푸념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은 하도 손님이 없어 하루 장사를 끝내고 회사에 내는 ‘사납금’을 회사측에서 알아서 낮춘 형편이예요. IMF때도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딱 죽을 맛입니다”.
그런가 하면 강남의 대형 백화점들엔 주차장마다 고객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뤄 10여명의 주차요원들이 줄지어 통제하는 모습이 동대문시장과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백화점 매장 점원들은 최근 들어 손님이 대폭 줄었다고 하소연이지만 지하 음식백화점에서 꼭대기 생활용품 매장까지 바빠서 절절 매는 모습들이라 그저 ‘불경기와 관계없는 외딴 섬’으로만 비쳐졌다.
요즘 한국선 경기부양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국회에서는 추경예산과 감세 방안을 두고 정부와 정치권간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고 여야간에는 절충, 무산, 타협, 결렬이 거듭됐다. 경기부양,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금이라도 경기 진작책으로 떠들썩한 정치권을 바라보며 서민들은 희망을 갖고 다행이라고 안심할까.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불안한 건 아닐까.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불경기에 가장 민감하고 크게 타격을 받는 층은 서민층이어서 그렇고 또 한국의 경기는 곧 한인타운의 경기를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어서 그렇다.
김 상 경<특집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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