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가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작은 구슬처럼 보인다. 지구에서 달을 보면 달도 작은 구슬처럼 보인다. 달과 지구는 서로 멀리서 보기에 겉모습은 작은 구슬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달에는 지구를 보고 “작은 구슬 같다”고 생각할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지구엔 달을 보고 “작은 구슬” 같이 생각할 사람이 살고 있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달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 죽음이란 살아있는 생물에 한해 주어지는 어떤 한계상황이다. 그러니 생명이 살고 있지 않는 달에서는 죽음이란 개념조차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구엔 죽음이 존재한다.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란 사람을 포함해 모든 동식물들의 살아있음에 가치를 두는 현재진행형의 상황적 존재근거를 설명해 준다.
인간 개체와 동식물의 개체는 죽지만 인류와 동식물의 종류는 죽지 않는다. 유전 번식된다. 유형의 돌연변이와 종의 자연도태는 있지만 생명 그 자체는 지속되고 있다. 사람에게서만 흔히 발견되는 자살이다. 그러나 고릴라 같은 동물도 먹지 않아 죽는 경우도 있다한다.
죽음 그 자체가 안고 있는 의미는 모든 생물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지구가 만들어지고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생명체는 죽음이란 한계상황을 극복해 오지 못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다만 죽음의 시간이 이르거나 늦을 따름이다. 그리고 죽음 그 자체가 자연사와 사고 혹은 자살 내지는 타살이냐에 따라 해석이 다를 뿐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 한 인간의 죽음일 뿐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말이 많음은 어인 일일까. 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세상 관계와의 연계된 가치 때문일 것이다. 그가 평범한 영업사원이었다면 세상이 이렇게 그의 죽음을 두고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게다. 아무리 그가 자살을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냐”에서부터 “그의 죽음이 몰고 올 파장은 어떤 결과를 낳은 것인가” 등등. 수많은 억측이 나돈다. 재벌 회장, 그것도 남북 경제협력에 선봉을 서던 사람이 ‘자살’이란 극단적 죽음을 선택하므로 말미암아 끼치게 될 사회적, 경제적 영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등.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이 ‘자살론’에서 밝힌 세 가지 유형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자살 중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이타적’ 자살인 ‘순교자적 죽음’으로 보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또는 “정치가 그를 죽였다”란 ‘타살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건 그의 죽음은 더 분석되어야 한다. 함부로 ‘순교자적’ 죽음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그의 죽음을 통해 나타날 외적인 결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 자체를 두고 생각난 내적인 요인 중 하나는 그는 생명의 가치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데 둘 수 있다. 죽는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자살 그 자체는 도피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나라를 위한 ‘이타적 행위’가 아닌 ‘이기적’이거나 ‘아노미’적 원인에 근거했다면 그의 자살은 너무나 어리석은 죽음에 불과하다. 그는 죽기 전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수사 후 사람들과 만났다. 그가 죽은 당일도 똑같이 수사를 받고 사람을 만났다. 왜 그는 그 사람들에게 죽어야 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도 대체를 못한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청소년기에서도 죽음을 생각하고 죽는 이들도 많다. 반면, 죽도록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죽음을 탈출하는 사람은 대부분 어떤 종교건 신앙에 귀의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정몽헌 회장이 종교를 가진 신앙인이었는지는 모른다. 만약 정 회장이 종교를 갖고 있고 그와 상담할 상담자가 있었다해도 그가 극단적 자살을 시도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신앙은 필요한 것이다. 이미 그는 죽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또 다시 정 회장과 같은 전철을 밟을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달에는 죽음이 없다. 달에 가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청색을 띈 구슬 알처럼 보인다. 지구 안에 사는 생물들. 모두 죽는다. 죽는 날까지 열심을 다해 살아봄이 태어난 도리가 아닐는지.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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