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할리웃을 누비는 한인여성 3인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하면서 흥미를 끌었던 대목은 ‘소시지 중에 단연 최고(Best of the Wurst)’라는 단편영화 제작이었다.
그레이스 이 감독이 베를린에 도착해 제일 먼저 먹게된 패스트푸드 ‘커리워스트(Currywurst)’가 영화의 소재다. 커리워스트는 카레 가루를 넣고 독일 소시지인 워스트를 구워 토마토 소스를 얹은 소시지 요리. 커리워스트의 잊을 수 없는 맛에 반해버린 이감독은 베를린에 머무는 내내 ‘커리워스트’ 이야기만 꺼냈다고 한다. 더욱 신기한 건 커리워스트가 화제가 될 때마다 베를리너(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 놓더라는 것.
독일 출신 이인아 프로듀서의 설명에 따르면, 워스트는 대부분의 독일가정 식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독일의 대표적인 음식. 그 중에서 ‘커리워스트’는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베를린의 유명한 패스트푸드로 베를리너에게 향수를 자아내는 토종요리라고 한다.
당장 커리워스트를 시식해봤다. 처음으로 맛본 소감은 한마디로 실망. 이타미 주조의 라면영화 ‘탐포포(1986)’를 보고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일본 라멘을 처음 먹어본 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농심 신라면의 매콤한 맛에 길들여진 미각이 돼지뼈나 닭뼈, 고기를 넣어 우려내 개운하기 그지없다는 라멘 국물 맛에 이상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구운 소시지가 내는 맛도 그렇고 케찹과 카레 파우더가 내는 익숙하지 않은 맛에 얼른 삼켜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순대처럼 굵고 기다란 모양에서부터 새끼손가락 굵기의 것까지 각양각색인 이 워스트를 맛있게 즐기려면 독일식 김치인 ‘싸워 크라우트’를 곁들여 먹어야 한다. 베를린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있나...
열흘쯤 지나 산수당에 추석음식 취재를 갔다. 송편 옆에 보기만 해도 먹음직하게 지져진 녹두빈대떡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기 그지없는 구수한 냄새. 간간이 씹히는 김치의 신 맛, 그리고 고사리, 숙주가 어우러져 내는 그리운 고향의 맛에 “역시 신토불이가 최고”를 내세우게 했다.
추석이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김치 넣고 빈대떡을 부쳐먹으며 고향집에 전화나 해야겠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 부엌에 있는 어머니 등뒤에서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를 흥얼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김나듯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하 은 선
<특집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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