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나의 건망증에 대해서 쓴 것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고백해왔다. 이번 주에는 남의 건망증들에 대해 발표하며 실컷 비웃고자 한다.
우리 특집 2부의 김수현 기자. 2년전 한국에 나가 결혼했는데 결혼식 당일 신랑 턱시도를 놔두고 자기 드레스만 챙겨들고 식장에 갔던 대단한 전력을 자랑한다. 다행히 부랴부랴 현장에서 신랑에게 다른 것을 빌려 입힘으로써 무사히 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역시 특집 2부의 하은선 기자. 고양이를 좋아해 집에서 두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하루는 장난이 심한 놈을 벌주기 위해 밖에 내놓았다가 그 사실을 깜빡, 고양이가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온 집안을 찾아다니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경제부의 김상목 기자. 양복저고리를 유난히 자주 잊어버리는 그는 어느날 퇴근해 집에 도착하고보니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현관문 열쇠가 없었다. 이상해서 문득 살펴보니 권기준 부장의 자켓을 떡 걸치고 집에 돌아갔던 것.
사회부의 김정섭 부장대우. 취재 가려고 주차장에 내려가보니 차 열쇠가 없었다. 주머니에도, 책상에도 없어 편집국과 지하 주차장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찾았는데 나중에 보니 한 손에 취재 수첩과 함께 꼭 쥐고 있더란다.
편집부의 맹명숙 차장. 요리하다가 약지 손가락을 베었는데 깜빡 잊고는 멀쩡한 중지 손가락에 약을 바르고 일회용 반창고까지 붙였다. 약을 바르면서 참 살성도 좋지, 어느 틈에 이렇게 아물었을까라며 남편에게 자랑까지 했는데 얼마후 비눗물에 손을 씻자 엉뚱한 곳이 쓰라리면서 진상을 깨달았다고.
특집 1부 부장인 조윤성 부국장. 자동차 개스를 넣으러 주유소에 갔다가 캐시어에게 돈을 내고 나와서는 차를 몰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개스 넣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편집국의 모 인사는 한국일보 사옥이 버몬트에 있던 시절, 화장실과 식당이 같은 복도 끝의 서로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식당으로 들어서면서 바지 지퍼를 내렸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남겼다.
피날레는 다시 나의 건망증으로 장식한다. 2년전 연말 아웃렛에서 일어난 일. 쇼핑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아예 하루 휴가를 내어 멀리 카마리요까지 쇼핑을 나섰다. 혼자서 신나게 돌아다니며 그 많은 스토어를 일일이 둘러보고 쇼핑하기를 너댓시간. 아들 것, 남편 것, 내 것, 오만가지 크리스마스 선물 등등하여 쇼핑백이 수없이 불어났다.
그런데 한 스토어에서 물건을 고르느라 골똘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손이 허전하여 발 밑을 보니 그 많던 쇼핑백이 하나도 안 보이지 않는가. 가슴이 ‘철렁’ 하는 소리를 들은 나는 너무도 놀라서 미친 듯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은 매장이 매우 크고 넓은 색스핍스 애비뉴 아웃렛이었는데 사색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를 보고 한 세일즈맨까지 도와주겠다며 함께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황당함과 허무함이란! 차라리 돈을 잃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몇시간을 돌아다니며 정성껏 골라 산 그 물건들을 다시 돌아가 다시 사야한단 말인가, 아니면 이대로 잊어버려야한단 말인가. 더 이상 쇼핑 의욕이 없어지고 눈물까지 그렁거렸지만 몇 가지를 더 사 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추슬러 자동차로 돌아가 트렁크를 열었다. 그 순간 나는 입을 딱 벌렸다.
트렁크 속에 나의 모든 쇼핑백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쇼핑하던 중 너무 짐이 많아지자 중간에 차로 돌아가 다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그리곤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세상에, 잊을 일이 따로 있지. 나는 그 날처럼 건망증 때문에 울다가 웃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건망증이 이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주 상세히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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