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자/수필가

한 여름 땀의 대가로
수확의 기쁨 얻듯이
수고와 인고를 통해 얻는
감사는 더욱 값진 것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다. 자연 속에 살아 있는 것들이 살찌고 열매맺으며, 빈 마음에 의미가 채워지고 가난한 심사가 풍성해 지기에 저절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결실의 계절에 느끼는 풍요는 곧 전능자를 향한 감사의 마음인 것이다.
한해 동안 지내 오면서 감사할 일들을 찾아본다. 종이에 적는다면 한 장을 다 메우고도 남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평소에 자신이 원하고 갈구하던 것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감사의 마음이 든다. 숨을 한 번 내쉴 수 있는 것, 발을 디뎌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 것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만이 감사할 조건이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일상을 거치며 생활 전체가 감사로 이어져야함을 잊고 살기에 세월이 지나고 난 후에야 이전 것에 대한 감사를 깨닫는다. 한 여름 땀흘리며 일한 농부가 그 땀의 대가로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기쁨처럼, 수고와 인고를 통해서 얻은 감사는 더욱 값진 것이다.

몇 년 전, 명동 성모병원 입원실 앞에서 평범한 일상의 것들에 감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밝은 햇빛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맑고 청아한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 수 있도록 생명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삶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일까. 그들은 괴로움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기쁨을 체험한 것이다. 가장 작은 것에 감사와 애정을 기울이고 그 마음 속에 전 우주를 포옹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단 하루뿐인 오늘을 살고 있기에.

뚜루게네프의 산문시 ‘거지’에 보면 동냥을 구하는 늙은이에게 무엇인가 주기 위하여 주머니를 뒤졌지만 지갑도 안 가지고 나왔고 시계도 손수건조차도 없었다. 너무나 미안해진 주인공은 늙은 거지의 더럽고 파리한 손을 꼭 잡으며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음을 사과했다. 그러자 거지는 너무나 감격하여 돈보다 더 고마운 마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나 역시 그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 거지는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동냥을 할 망정 인간의 가치를 정신적인 것에 두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다.

가수 L양의 부친은 땀흘려 수고하는 농민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는 분이다. 어느 공개 방송에서 L양이 전해준 이야기는 신선하게 가슴에 남아 있다. 그 분은 자녀들이 식사를 마친 그릇에 밥알을 남겨 놓으면 그 숫자만큼 회초리를 든다고 한다. 밥알 한 개마다 한 대씩 종아리를 때리며 ‘농민의 땀’을 외치게 한다. 어느 날인가 L양이 조그마한 밥덩이를 남겼는데 한 알 한 알 세어가며 때리고, 맞을 때마다 ‘농민의 땀’을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 가을에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감사야말로 축복이 내게로 임하는 주요한 힘이기에 감사를 떠나서는 능력 있는 삶을 살수 없다. 구하여 얻기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또 다른 축복을 받을 만큼 성숙한 사람의 자세이다. 인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생동감 넘치는 삶, 마음에 행복이 깃드는 삶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