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동창회 송년회 같은 일반 모임에서부터 음악회 뮤지컬 연극 등, 그야말로 풍성한 연말을 엮어 가는 모습들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어느 작은 음악회에 갔다왔다. 첼로를 배우는 학생들이 모여서 그동안 자기들이 배운 기량을 선보이고 또한 모두가 함께 연주회를 갖는 그런 조촐한 음악회였다.
이제 고사리 손을 벗어난 아이에서부터 육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까지로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이루어진 멤버들의 모습은 배움에의 열기를 충분히 느끼게 하였다.
힘겹게 농사지으며 자식들 학교 보내기에도 힘들어하던 우리의 어린 시절. 드넓고 푸른 들판을 질주하며 파란 하늘아래 뛰어 놀다 초가지붕 굴뚝위로 뭉게뭉게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흙먼지 툭툭 털고 일어나 저마다 송아지며 염소며 하나씩 줄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 피아노도 모르고 바이올린도 모르고 첼로도 모르고 자랐지만 시냇가에 앉아서 물에 발을 담그고 버드나무 가지 잘라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내어 입에 불면 고운 음을 쏟아내는 버들피리가 되고, 넓은 잎사귀의 풀을 몇 개 뜯어 입술에 가벼이 물고 ‘후’ 하고 내어 불면 ‘삐리리~’ 하며 울려 퍼지는 풀피리 불면, 지나던 바람도 미루나무 가지를 흔들어 한 소리 하곤 했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였다.
지금 그 어느 아이들이 그렇게 태연 자작하니 들판에서 놀고 있을 수 있을까.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교문을 나서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속셈학원을 가느니 웅변학원을 가느니 태권도학원을 가느니 수영학원을 가는가 하면, 어떤 그룹은 영어를 배우러 가느니 수학을 배우러 가느니 줄줄이 기다리는 과외의 스케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는 이제 기본으로 누구나 배워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아침 일찍 등교하러 나간 아이는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손과 발과 몸은 덕분에 갖가지 재능을 갖추어지게 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과연 푸른 하늘이 보이고 드넓은 들판에 서있는 미루나무 가지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제 배운 지 얼마 안된 아이부터 나와 한사람씩 각자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연주를 하였다. 조금은 서툰 실력에서부터 절정의 실력까지 연주되는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연주하기까지는 정말로 많은 노력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 중에는 처음부터 자기가 꼭 하고 싶어서 배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시작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미 버들피리 풀피리는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거의 사라져 버린 지 오래.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 모두가 합주하는 그 순간부터 자기의 음악을 진정 사랑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입술에서 떨리는 풀피리는 아니더라도 진정 자기가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좋아한다면 그것보다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을까.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즐길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풀피리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최재명<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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