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김<회사원>
이민 올 때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이민생활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마중 나오는 사람이 세탁소를 하면 십중 팔구 새로 온 사람도 세탁소를 하고 부동산을 하면 부동산을 한다고 한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경험도 없어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 대부분 주변의 예를 따를 수 밖에 없으니 우스개 소리가 아닌 일리 있는 말이다.
처음 이민 왔을 때뿐일까?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자기 소개서를 썼던 기억이 난다. 새 학년이 되면 취미, 친구, 가족사항 등을 적어내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그 항목에 꼭 들어가는 것 중의 하나가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였다.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 등 주변 사람을 쓰기도 하고 예수님, 부처님 등을 쓰기도 하고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을 쓰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 남자 짝꿍은 강씨인데 꼭 강감찬 장군을 썼다. 자기가 직계 자손이기 때문이라나, 내 조상이니 자랑스럽고 존경해야 한다는 논리였으리라.
나는 그 때마다 늘 누구를 써야 할 지 고민했었다. 결국 친구들을 누굴 썼나 슬쩍 보곤 적당한 이름 아무거나 써 넣곤 했다. 한 때는 그러고선 ‘난 왜 존경하는 인물에 쓸 사람이 없을까’하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부모님은 사랑하긴 하지만 ‘존경’이란 말을 하기에는 좀 쑥스럽고, 예수님, 부처님 등이나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때 당시 내가 읽은 위인전은 대부분 일화 중심으로 그들은 원래부터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난 것처럼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이 왜 위대한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철없는 나의 고민은 결국 별 결론은 내지 못하고 그냥 잊혀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왜 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는지 후회되곤 한다. 그 때 내가 존경하는 인물을 정했다면 그리고 그가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잘 보고 배웠더라면 내 인생의 갈피갈피에서 그토록 갈팡질팡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이다. 그 때는 왜 그리 ‘존경’이라는 말을 부치는 것이 어색했던가? 나이를 먹을 수록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 가르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부터 늘 열정적이던 학창시절의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부터 봉사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영어에 ‘mentor’라는 말이 있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믿을 수 있는 조력자, 고문 정도의 뜻이 된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내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너의 mentor을 꼭 정하라고, 없다면 적극적으로 찾아 보라고, 너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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