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서도 그치지 않는 한국 정치계의 소용돌이를 보면서, 이러한 때, 한국의 교회들은 어떤 입장과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궁금한 생각을 갖게 된다.
얼마 전 서울의 유서 깊은 교회의 목회자가 현 정부,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설교를 해서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뉴스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의 내용은 정작 본문의 내용을 벗어난 시사
적인 설교였음에도 불구, 현 정부의 정치 현실과 관련하여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짧은 선교 역사 속에 경이적인 교회 부흥을 이야기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자랑이었다. 네 명, 또는 다섯 명중의 한 사람이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일본은 유사한 선교의 역사를 갖으면서도 아직도 2퍼센트 미만의 기독교 신자를 갖는다고 한다. 한국은 곳곳마다 교회가 있고 무수한 신앙관련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사회 현실에 교회는 어떤 기여를 하고 있을까?
신문지상에 비리로 연루되어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신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이런 현실의 근저에 일부 한국교회가 갖는 성경 이해 내지는 메시지에 한 가지 커다란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기복신앙’으로 둔갑시킨 일부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뿌린 씨의 열매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복을 받아, 교인의 수는 불어나고, 교회는 엄청 큰 교회당을 짓고 최신 설비로 꾸미고, 교인들의 생활 여건이 3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신과 삶에 있어 무엇이 바뀌었다는 것인가? 적어도 교회가 윤리적으로 세상 속에서 신뢰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교회의 교회 된 표는 세상 속에 때묻지 않은 성결함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삶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가는 길이기에 좁은 길, 험악한 길(마태복음 7:14)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 속에 적은 자들로서 서로 유대와 사랑의 격려 속에 외로운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은 이 세상
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통된 신분 속에서 동지애, 형제애를 확인할 수 있을까? 거래 속에서 만나는 교인들을 마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런 현실을 보면서 갖는 안타까운 염원은 교회가 본래의 메시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부단히 찌르는 막대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의 글이 생각난다.
세상을 보다 더 용이하게 살기 위해 기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어 살며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깨끗함과 진실함과 영생의 소망 속에 살기 위해서 교회는 사람을 초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가 자기 변혁을 강조하지 않으면, 믿음 생활을 자기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름의 장소로 변질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디모데전서 6:5) 이곳 이민 교회 안에서 이런 다툼의 소식을 늘상 듣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새 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하는 이 때, 믿는 우리들이 먼저 자기 갱신의 삶을 추구하고 성결함과 소망의 삶으로서 우리의 믿음과 존재를 세상 속에 증거하는 삶에 힘썼으면 한다.
김희건목사(뉴저지베데스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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