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해 보신 분은 아실 것이다. 대표기도자가 너무 시간을 오래 끌며 횡설수설하는 기도를 할 때 목사님의 마음은 천국에서 지옥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기도 때마다 한국에서 시작해서 전세계를 한바퀴 돌아야 기도가 끝나는 분이 있는 가 하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끝나야 끝나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수양이 잘된 목사님이라도 열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맥박이 자동차 피스톤처럼 뛰게 된다.
꽤 유명한 한국의 모 목사님은 대표기도가 5분을 경과하면 뒤에서 기도하는 분의 장딴지를 구둣발로 걷어찬다고 한다. 참 목사님도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장로님을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대표기도가 길어짐으로 해서 예배가 엉망이 되는 꼴을 한 두번 경험한 것이 아니어서 그러한 목사님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어떤 분은 목사님에게 장딴지를 걷어 채여도 초지일관 끝까지 밀고 나가기도 한다.
왜 그럴까? 자기 딴에는 이 기도는 꼭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분수에 넘치게 기도한답시고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못된 심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걷어차는 목사님은 왜 그러시는 것일까? 대표기도가 길어지면 성도들이 예배 시작부터 진이 다 빠지고 역정이 나서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순서에서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다. 미국에 와서 한가지 기이하게 여겼던 것은 고속도로에서 최저속도 40 마일이란 표지가 있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속도 제한하면 최고속도만 생각하지 최저속도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고의 대부분이 과속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최고속도 위반에 대해 딱지를 뗌으로서 이를 막으려는 의도는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너무 느리게 달리는 것도 속도위반으로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사고의 위험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면 무엇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속도로로 진입했을 때에는 다들 빨리 달리기 위해서 들어왔을 것인데 바로 앞에 차가 알짱거리며 천천히 가보라. 어떤 경우는 휴대전화로 노닥거리느라, 어떤 경우는 주위 경치 구경하느라 태평으로 가는 차 뒤에 선 차 운전자의 심사가 편하겠는가? 사실 운전을 하다 보면 엄청나게 차가 밀린 이유가 한참 앞길에 차 한 대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인 것을 자주 발견한다.
대표기도를 오래 끌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사실 이렇게 너무 천천히 달림으로 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차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사랑은...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고전 13:5).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허락하시고 소속사
회나 집단을 허락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매사에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실천하는 일터로 허락하신 것이다. 운전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잊지 말고 묻는 습관을 가지자. 내가 너무 천천히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가? 과연 내가 하는 일이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일인가?
김진태 목사(얼라이언스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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