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교포사회에 각종 단체와 단체장들이 많은 것을 두고 본국 사람들은 거기는 관직이 없는 사회라 명함이 필요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비아냥댄 적이 있었다. 그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관직은커녕 회사원 신분도 포기한 채 무관 제왕으로 만족하며 이민의 삶을 꾸려 나가다가도 문득 명함이 그리운 때가 있었고 그래서 이민자들은 이런 저런 모임을 만들어 이사장입네 회장입네 하는 호칭을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거꾸로 되어 버린 것 같다. 서울의 그 숱한 관직들은 단지 명함 기재용으로 추락해 버리거나 이력서용으로만 둔갑해 버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국의 참여정부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데 각료나 청와대 비서거나 가리지 않고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려 조금 얼굴이 알려졌다 싶으면 모두다 그 직을 포기하게 하고 국회의원으로 징발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명했다 사표 받고, 또 임명했다 사표 받음으로 해서“전국민의 관직화”를 도모하자는 것인가.
이 정부가 출범한지가 1년도 못됐는데 같은 자리에 벌서 2~3명이 지나간 자리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고서 무슨 업무의 충실이니 업무의 효율화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각료나 참모가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시작하고 마감하는 미국의 풍토와는 너무나 판이한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되면 나누어 줄 수 있는 자리가 2,000개라고 하던가 3,000개라고 하던가. 아무렴 한 나라의 수장인데 그 정도 인사권을 못 가질 이유가 없다. 그 동안 도와준 사람, 능력을 인정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안 그런가. 아칸소 시골 사람들이 몰려와 차지했던 워싱턴 DC의 주요 직책들이 지금은 텍사스 카우보이들로 다 메워 졌어도 누가 낙하산 인사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어디서 데려 왔던 그 자리에 합당한 자격과 경력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임명하는 절차에 하자만 없었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참여정부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은 의장인 대통령을 대신해 국내외 1만4,940명의 자문위원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직책으로 지금까지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거나 통일 전문가 내지는 그 문제에 열정이 많은 분들로 임명이 되었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이번에는 그런 문제에 전혀 관심이나 고민한 적이 없는 경력의 소유자를 단지 대통령의 고등학교 선배며 선거 때 도움을 줬다고 해서 앉히더니 처음 소문대로 1년도 못 채우고 국회의원에 나가기 위해 그 자리를 물러섰다고 한다.
소위 ‘얼짱’‘방송짱’다 모으더니 이제는 ‘명함짱’들로 승부수를 건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숫자 놀음에 너무 몰두해 있어 저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싶은 불안감이 커진다. 급할수록 쉬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 한인 사회에도 각급 단체장 선거가 한창인데 당사자들은 참으로 무슨 목적과 사명이 있어 하는 건지 아니면 명함이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냉정히 돌았으면 한다.
김용현/한미평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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